와우 스토리 정리 11부(11-3) - 광기의 끝
31년
기실, 이 상황까지 온 것은 가로쉬 혼자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한때 가로쉬는 쓰랄의 아래에서 내면의 지혜를 다져갔다. 본래 가로쉬의 성질을 억누르고 그의 장점을 살리려던 것이 쓰랄이 지향했던 바였다. 어쩌면 그는 정말로 훌륭한 지도자가 됐을 수도 있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러나 무릇 지도자란 주변의 십상시를 쳐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했다. 설령 그런 자가 주변에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뚝심을 가졌어야 했다. 가로쉬는 아직 그런 지혜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곁에는 치명적인 사기를 품은 간신배가 있었다. 전직 비밀경찰 말코록이었다.기무사
본래 렌드 블랙핸드 휘하의 비밀경찰 수장이었던 말코록은 렌드 블랙핸드 사후 검은바위 부족의 대표를 맡아왔다. 그의 성향은 한마디로 '정치군인'이었다. 온갖 아첨과 모함, 음모, 이간질에 통달하여 그 자리까지 올라온 말코록은 가로쉬가 호드 대족장 대리를 맡은 후 그의 조언가로 활동하며 가로쉬의 폭력적인 본성을 부추겼다. 집중의 눈동자를 이용해 테라모어를 소멸시킬 계획을 짠 것도 말코록이었고, 볼진과 바인을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던 가로쉬에게 바람을 넣어 그들을 죽일 생각을 하게 만든 것도 말코록이었다. 그는 가로쉬와 함께 이 사태를 만든 최대의 주범 중 한 명이 분명했다. 다만 가로쉬에 대한 충심만큼은 진심이어서, 그는 오그리마 지하 요새에서 주군을 위해 마지막까지 싸우다 최후를 맞이했다.
가로쉬의 최측근이었던 말코록
물론 가로쉬가 온전히 말코록 때문에 '타락'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본성이 나타난 것일 뿐, 최대의 책임은 여전히 가로쉬에게 있었다. 가로쉬에게 남편 로닌을 잃은 베리사는 재판이고 뭐고 분노에 차 그의 독살을 기도했다. 그러나 안두인의 저지로 그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안두인은 대화를 통해 가로쉬의 변화를 끌어내고자 했다. 창살 사이로 수많은 문답이 오가며 두 남자는 서로의 신념을 교환했다. 백성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저버린 아서스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고, 호드의 부흥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 했던 가로쉬에 대한 성찰도 있었다. 실제로 그러한 시도는 효과가 있는 듯했다. 최후 변론장에서 가로쉬는 안두인 덕택에 다리의 사슬을 풀고 전사답게 서있을 수 있었다며 모두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이제 진심을 말하겠다며 최후 변론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진술은 안두인을 완전히 좌절시켰다. 그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래! 맞아! 나는 얼라이언스의 무릎을 꿇릴 수만 있다면 테라모어 같은 도시를 수 천 개라도 파괴했을 거다! 재잘재잘 지껄이는 나이트 엘프 새끼들을 전부 사냥해서 가냘픈 울음소리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들리지 않게 만들었겠지! 능력만 된다면 모든 트롤들과 모든 타우렌들, 가식적인 웃음을 짓는 모든 블러드 엘프들과 탐욕스러운 고블린들과 비틀비틀 걷는 시체들을 모조리 없애버렸을 거다. 그리고 거의 그럴 뻔했지! 내가 저지른 포악무도한 짓들을 나는 절대 후회하지 않아! 더 저지르지 못한 게 후회스러울 뿐이다! 나를 괴롭히는 유일한 사실은 참된 호드가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기 전에 저지를 당했다는 거다! 아무것도, 세상의 어떤 것도 나를 막을 수 없다!"
전혀 변하지 않은 가로쉬
가로쉬는 자신의 무죄나 감형을 바라지 않았다. 죄책감 또한 전혀 느끼지 않았다. 바인은 아버지를 죽인 가로쉬에 대한 미움을 억누르고 그의 변호를 억지로 맡고 있었으나 그 모든 노력은 헛짓이었다. 재판장이 소란스러운 가운데, 그곳에 참석한 또 한 명의 남자로 인해 재판은 완전히 파토가 났다. 호드측 참고인으로 참석한 청동용 카이로즈라는 남자 때문이었다. 그는 가로쉬를 탈출시켰다.
카이로즈는 시간의 길의 관리를 맡고 있는 필멸자 단체인 <시간여행단> 소속이었다. 그들은 무한의 용군단에 의해 틀어진 시간대를 고치는 일을 맡고 있는 만큼, 시간에 관련된 능력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카이로즈는 아무도 맡으려 들지 않았던 가로쉬 측의 변호인을 자청하여 바인의 보조를 맡았다. 그리고 '시간의 환영'이라는 기술로 재판장에 모인 이들에게 과거의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카이로즈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는 사실 무한의 용군단 소속이었다. 그는 가로쉬를 따르는 잴라의 용아귀 부족을 이용해 재판장을 습격하게 만든 다음, 그 틈에 시간에 균열을 내어 그곳으로 가로쉬를 빼돌렸다. 가로쉬와 카이로즈가 넘어간 곳은 약 35년 전의 평행세계, 드레노어였다.CCTV 셔틀
오크가 타락하기 전의 드레노어 세계
카이로즈의 목적은 원대했다. 처음은 아제로스지만, 이후 다른 세계까지 정복하겠다는 것이 그의 야망이었다. 그는 시간을 넘나드는 무한의 용군단답게 그 모든 가능성을 무한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그 야망을 실현할 만큼 영리하진 못했다. 자신의 계획을 가로쉬에게 쉽게 드러낸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가로쉬는 오래전 굴단에게 조종당했던 아버지처럼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될 생각이 없었다. 가로쉬는 자신의 계획을 웅앵웅앵 떠드는 카이로즈의 등 뒤에 주저 없이 시간의 환영의 파편을 찔러 넣어 그를 살해했다.
도구로 이용당하길 거부한 가로쉬
가로쉬가 발을 디딘 드레노어는 과거의 시간대긴 하지만 그가 본래 있었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평행세계였다. 이곳에서 무언가를 변화시킨다고 해서 본래 세계의 미래에는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때문에 이 드레노어는 가로쉬가 알고 있던 역사와는 다른 부분이 많았다. 예를 들면 가로쉬의 어머니 골카가 아들을 낳기 전에 사망했다던가 하는 점이었다. 즉, 그 세계의 그롬마쉬 헬스크림에겐 아들이 없었다. 가로쉬도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세계였다.
오우거와의 전쟁에서 일찍이 사망한 그롬의 아내 골카
가로쉬는 카이로즈를 찔러 죽인 시간의 환영 파편 조각을 품에 넣고 그롬마쉬를 찾아갔다. 아들 행세는 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낯선 이방인이었다. 따라서 한 부족의 장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지만 가로쉬는 '막로간'이라는 의식을 통해 자격을 증명했다. 막로간은 막고라와 달리 싸울 힘이 더 없을 때까지만 싸우는 결투였다. 손을 수갑에 묶은 채 4:1의 상황에서도 막로간에서 승리한 가로쉬는 곧 젊은 그롬마쉬를 알현했다.
전성기 그롬을 만난 가로쉬
가로쉬는 시간의 환영 파편을 통해 그롬에게 미래를 보여주었다. 다만 자신의 입맛에 맞게 적당히 편집한 미래였다. 그 환영에서 그롬은 악마의 피를 마시고 군단의 노예가 되어버린 오크의 미래를 보았다. 그롬은 응당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얼마 후 타락한 굴단이 나타나 그롬을 필두로 한 호드를 모아놓고 만노로스의 피를 마실 것을 종용했다. 그롬은 거절했다. 그러자 만노로스가 친히 나타나 굴단의 말대로 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곧 미리 매복해있던 가로쉬와 오크들이 나타나 공세를 펼쳤고, 그 사이 그롬마쉬는 만노로스의 머리에 도끼를 박아 넣었다.
만노로스의 조기 퇴장과 함께 바뀌는 역사
이로써 평행세계의 순수 호드 부족은 군단의 개로 전락할 운명을 벗어났다. 그들은 가로쉬가 가져온 미래 기술을 바탕으로 전쟁 병기를 새롭게 개발하여 강력한 군대를 재편했다. 그들에게 '예언자'라 불리게 된 가로쉬는 이들의 힘을 이용해 자신을 폐위한 아제로스에 복수를 원했다. 이른바 <강철 호드>의 탄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