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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스토리 정리 12부(12-3) - 가시의 전쟁

gyu30 2021. 6. 5. 04:30

 

 

 

33년

 

 

아제로스는 군단과의 기나긴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그 대가로 참혹한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호드와 얼라이언스는 그 상처의 치유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얼마 전부터 아제로스 곳곳에서 발견되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광물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호드와 얼라이언스는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진 그 광물을 이용해 자신들의 전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동맹 세력도 늘렸다. 투랄리온이 이끄는 빛벼림 드레나이, 알레리아가 이끄는 공허 엘프, 아버지와 화해한 모이라가 이끄는 검은무쇠 드워프, 그리고 해상국가 쿨 티라스는 얼라이언스에 합류했다. 본래 나이트 엘프 명가의 한 분파였으나 자신들을 경멸하는 티란데에게 모욕을 받고 블러드 엘프에게 호드 가입 권유를 받은 나이트본, 바인에게 제의를 받은 높은산 타우렌, 아이트리그의 권유를 받은 평행 세계의 마그하르 오크, 쿨 티라스 못지않은 해군력을 가진 잔달라 트롤은 호드에 가입했다. 다가올 진영 간 전쟁에 대비하는 것만이 그들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살게라스가 꽂아 넣은 검으로 인해 상처받은 대지에서 아제로스의 생혈이 새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아제로스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캐내던 광물이 바로 그 아제로스의 피, 아제라이트였다.

 

 

아제로스의 생혈을 파내왔던 호드와 얼라이언스

 

 

이를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아제로스의 세계혼과 교감을 할 수 있는 마그니 브론즈비어드였다. 진영을 떠나 아제로스의 대변자가 된 마그니는 얼라이언스와 호드 모두에게 아제라이트 채취를 그만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실바나스는 듣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족장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제라이트를 이용한 각종 전쟁 병기 개발을 강행했다. 안두인도 아제라이트 채취를 함께 중단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거절했다.

 

실바나스는 얼마 전 안두인을 믿고 포세이큰과 그들의 생전의 가족들과의 상봉 이벤트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도중에 안두인이 그 만남에 관한 규칙을 어기고 그와 동시에 일부 포세이큰들이 변절을 시도하자 실바나스는 그것이 포세이큰의 내부 동요를 일으키려는 얼라이언스의 간계임을 의심했다. 물론 그것은 오해였지만 안두인 역시 실바나스가 자신의 백성(변절자)들을 주저 없이 죽이는 것을 보고 그녀가 완전히 길을 잃었다고 여기게 되었다.

 

이처럼 호드와 얼라이언스의 갈등은 점점 더 심화되었다. 그러나 호드의 새 대족장이 된 실바나스는 그 갈등을 극복할 생각이 애초에 전혀 없었다. 그녀는 사실 가로쉬의 확장 전쟁에도 그리 반대하는 자가 아니었다. 다만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 그녀 역시 어찌 보면 근본적인 사고방식은 같은 자였다. 그동안 호드와 얼라이언스 사이에 쌓인 감정은 절대 지워질 수 없는 것이었다. 진영이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종족 간의 다양한 원한은 더욱 그랬다. 최근 나타난 광물 아제라이트 또한 미래의 갈등이었다. 따라서 어차피 언젠가는 벌어질 전쟁이라면, 넋 놓고 후세대에게 미룰 게 아니라 먼저 움직여야 했다. 그것이 호드의 미래를 위한 가장 나은 선택이라고 그녀는 믿었다. 6년 전 그녀는 길니아스 침략 전쟁의 선봉에 서서 그 지역을 호드의 손아귀로 가져왔다. 그리고 대격변과 군단의 침공이 끝난 지금, 비로소 그녀가 생각한 때가 되었다. 그녀의 최종 목표는 스톰윈드 침공, 나아가 얼라이언스의 완전한 멸망이었다.

 

 

너희는 결국 모두 죽어서 날 섬길 것이다...

 

 

다만 실바나스는 가로쉬를 경멸했었다. 그는 무모하고 저돌적이었다. 그녀는 계획을 신중히 세우고 필요한 때에 신속한 행동력을 보이는 것을 선호했다. 실바나스는 자신의 은인인 쓰랄을 존중했지만 교만한 가로쉬와는 항상 부딪혀왔다. 이제 자신의 방식을 보여줄 때였다. 그 첫 번째 목표는 나이트 엘프의 도시, <다르나서스>였다.

 

백전 노장의 호드 대군주 바로크 사울팽은 의문을 표했다. 사울팽은 전쟁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당장의 평화보다 '미래의 영구적인 평화를 위한 전쟁'을 도모하자는 실바나스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다르나서스를 첫 격전지로 삼은 것은 승리를 위한 전쟁이라고 보기에 어려웠다. 물론 다르나서스는 호드에게 유리한 지역인 칼림도어 대륙에 있었기에 그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반대로 언더 시티나 실버문이 동부 왕국에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섣불리 힘의 균형을 건드린다면 얼라이언스가 동부 왕국에서 연합하여 호드를 칠 것이고 동부 대륙의 호드 전력은 그것을 막기 어려울 게 분명했다. 그러나 실바나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반문했다.

 

"그들이 연합하지 않는다면?"

 

실바나스는 얼라이언스의 분열을 노렸다. 호드가 나이트 엘프의 본거지를 기습하여 점령한다면 얼라이언스는 처음엔 당장 뭉쳐서 언더 시티나 실버문에 복수를 꾀할 것이다. 칼림도어로 넘어올 함대 전력은 부족하기에 그들은 그것을 노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곧 절대 좁힐 수 있는 이견이 벌어질 것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었다. 

 

하나는 나이트 엘프가 그 '복수'에 반대하는 것. 그들은 다르나서스가 호드에게 인질로 잡혀있는 상황에서 얼라이언스가 섣불리 행동하면 다르나서스가 완전히 멸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나이트 엘프들은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

 

둘째는 나이트 엘프가 무리해서라도 다르나서스 수복에 총공세를 가하자고 주장하는 것. 설령 그들이 그러한 선택을 한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6년 간이나 설욕을 참고 남의 나라에 얹혀 살아온 길니아스가 있었다. 나라를 잃고 울분을 참으며 그토록 기다리던 자들이 있는데 나이트 엘프들을 먼저 돕겠다? 그것 역시 쉽게 풀릴 갈등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길니아스 수복을 먼저 하자니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다르나서스가 위험할 수 있기에 나이트 엘프들은 반대할 것이다.

 

이처럼 서로가 각자 다른 대응을 얼라이언스의 맹주에게 요구한다면, 스톰윈드의 애송이 왕은 정치적 혼란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실바나스의 판단이었다. 안두인은 똑똑하지만 그러한 정치적 경험이 부족했다. 그렇게 얼라이언스가 단합하지 못하면 각 국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따로 움직일 것이고 그렇게 각자가 자신의 본거지를 지키는 것에만 몰두하게 됐을 때, 그때가 바로 스톰윈드를 칠 기회였다. 수많은 전쟁과 희생 없이도 호드는 승리할 수 있었다. 사울팽은 동의했다. 

 

 

실바나스의 전략에 동의한 바로크 사울팽

 

 

다만 문제는 다르나서스에 있을 말퓨리온과 티란데였다. 그들은 만 년을 살아온 영웅들답게 매우 강력할 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가 얼라이언스에게 희망이 되는 자들이었다. 실바나스는 그 희망을 꺾고 싶었다. 그녀는 또 다른 전략을 세웠다. 현재 오그리마에 넘치는 얼라이언스의 첩자들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얼마 후 얼라이언스 첩자들은 자신들이 알아낸 정보를 그들의 지도자에게 서둘러 전했다. 호드가 칼림도어 남쪽, 살게라스의 검이 꽂힌 사막 실리더스로 향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곳은 아제라이트가 가득한 지역이었다. 당연히 얼라이언스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곧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티란데가 스톰윈드로 향했다. 안두인, 티란데, 겐 그레이메인, 겔빈, 벨렌 등 주요 지도자들이 모두 모였다. 그들은 논의 끝에 실리더스에서 가장 가까운 나이트 엘프의 함대를 실리더스에 보내 호드가 무엇을 획책하고 있는지 먼저 파악하기로 했다.

 

안두인은 실바나스가 교활한 자라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의 곁에는 명예를 아는 바로크 사울팽과 같은 자도 있었기에 조금 더 믿어보고 싶었다. 필요하다면 싸우는 것도 불사할 생각은 있었지만 여전히 두려움은 남아 있었다. 안두인은 수십만 명의 목숨이 오가는 전쟁을 이끌어 본 경험이 없었다. 좀 더 신중하고 싶었다.

 

 

아직 망설임을 버리지 못한 안두인

 

 

그렇게 티란데와 많은 병력이 자신들의 고향에서 떠나있을 때, 사단이 벌어졌다. 호드의 대규모 병력이 잿빛 골짜기를 침범했다. 사실 실리더스는 미끼였고 그들이 노린 것은 다르나서스였다. 충격에 빠진 티란데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나이트 엘프 병력이 되돌아간다고 해도 상황을 뒤집기엔 늦은 시기였다. 뭣보다 다르나서스엔 그녀의 사랑하는 연인 말퓨리온이 남아 있었다. 만약 그가 죽는다면...

 

겐은 길길이 날뛰며 언더시티에 복수를 외쳤다. 그러나 안두인은 초조한 얼굴로 겐을 말렸다. 안두인이 판단하기에, 그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다르나서스 정복이 아니었다. 실바나스가 고작 도시 하나 정복하자고 갑자기 힘의 균형을 깨서 자신의 도시에 재앙을 초래할 리 없었다. 상황상 나이트 엘프와 길니아스 간의 입장 차이를 노린 간계가 분명했다. 그들은 필시 얼라이언스의 분열을 노리고 있었다.

 

안두인의 설명을 들은 겐은 놀라워했다. 똑똑한 줄은 알았지만 벌써 전략에 이 정도로 능통해졌을 줄은 몰랐다. 그러나 겐이 보기에, 아직 안두인은 경험이 부족한 헛똑똑이였다. 겐은 안두인에게 바보같은 소리 말라며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전했다. 길니아스는 나이트 엘프에 대한 은혜를 기억했다. 나이트 엘프는 대격변 당시 위기에 처했던 길니아스를 구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늑대인간의 저주에서도 구원해 주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그들의 도시에서 자신들을 보살폈다. 길니아스인들이 그걸 당장에 잊고 자신만 생각할 거라니, 실바나스의 간계는 애초부터 전제가 잘못됐다. 겐은 자신의 입장을 접을 줄 아는 자였다.

 

 

항상 안두인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돼주는 겐

 

 

그 시각, 사울팽은 말퓨리온을 상대하고 있었다. 말퓨리온 스톰레이지는 정말로 강했다. 늙은 전사 바로크는 만 년의 경험을 가진 대드루이드를 홀로 상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울팽은 엉겁결에 실바나스와 싸우고 있는 말퓨리온을 뒤에서 기습하여 쓰러뜨리는데 성공했다. 실바나스는 만족스러워 하며 사울팽에게 마지막 일격을 맡기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이것은 막고라가 아니라 전쟁이었기에 기습이든 뭐든 무리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울팽은 자신이 무심결에 저지른 짓에 충격을 받고 말퓨리온을 죽이는 것을 망설였다. 한때 아제로스를 위해 함께 싸웠던 만 년의 영웅을 이렇게 비겁하게 죽여도 되는 것인가. 그가 그렇게 한참을 주저하고 있을 때, 티란데가 작은 포탈을 열고 나타나 말퓨리온을 구출해갔다. 그녀는 안두인이 전해준 귀환석을 가지고 있었다. 사울팽은 그렇게 다잡은 말퓨리온을 놓치고 말았다.

 

 

만 년을 함께 해온 연인을 포기할 수 없었던 티란데

 

 

실바나스는 분개했다. 명예 타령하는 늙은 오크에게 일을 맡기는 게 아니었다. 말퓨리온을 놓친 건 중대한 실수였다. 수라장에서 살아돌아온 그 위대한 영웅은 적들에게 대단한 희망이 될 게 분명했다. 실바나스는 고민에 빠졌다. 그녀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미 이긴 전투였지만 계획에 커다란 수정이 필요했다. 원래 계획보다 더 많은 전쟁이 벌어지겠지만 상관없었다.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은 말퓨리온의 죽음을 대신할, 아주 치명적인... 치유될 수 없는 상처. 실바나스는 끝내 최후의 지시를 내렸다.

 

"불을 놓아라."

 

불을 놓으라니... 어디에? 당황한 부하들에게 실바나스는 흔들림 없이 목표를 다시 짚어주었다. 그녀의 지시에 충격을 받은 부하들은 매우 망설이면서 명령을 이행했다. 그들은 곧 세계수 텔드랏실에 불을 놓기 시작했다. 

 

밤하늘에서 거대한 신목이 활화산처럼 불타올랐다. 나이트 엘프의 도시 다르나서스는 세계수 위에 지어진 터전이었다. 즉 텔드랏실 방화는 다르나서스의 민간인들을 몰살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곳엔 나이트 엘프 뿐만 아니라 길니아스의 인간들도 살고 있었다. 주변에 쓰러져 있던 나이트 엘프 전사들이 울부짖었다. 제발 가족들은 살려달라고. 이미 이긴 전투이지 않냐고. 모조리 죽일 필요가 있느냐고. 그러나 실바나스는 명령을 거두지 않았다.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사울팽이 비명을 지르며 중지를 외쳤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한 번 놓인 불길은 멈추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 아이들... 불에는 지켜야 할 명예도, 망설임도 없었다. 모든 것이 사라질 때까지 태우려는 강렬한 의지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날 밤 다르나서스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산 채로 불타올랐다. 하나의 종족이 거의 절멸할 정도로. 그것은 테라모어의 재앙보다 더한 끔찍한 대학살이었다.

 

 

 

야이... 미친 년아...

 

 

안두인은 충격으로 몸이 차게 굳었다. 세계수가, 텔드랏실이, 마을이, 골짜기가, 생명이, 그 안에 있는, 그 안에 살아가는 모든 것이 불타버리다니. 세계수는 단순한 도시 이상이었다. 세계수는 셀 수 없이 많은 나이트 엘프의 집이자 영토였다. 다르나서스 이외의 지역에 나이트 엘프가 얼마나 있을까? 너무나 적었다. 이제 그들이 남아 있는 나이트 엘프의 전부였다. 실바나스 윈드러너는 종족을 학살했다. 안두인도 실바나스가 이기적이고 교활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잔혹할 줄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세계수를 파괴할 이유도 전략적인 당위성도 없었다. 얼라이언스는 오히려 더욱 단단히 뭉칠 것이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안두인은 실바나스를 막을 기회가 있었다. 그녀가 공격하기 전에 공격할 기회가 있었다. 안두인의 망설임은 그 기회를 거부했다. 안두인은 소매로 젖은 눈을 훔쳤다. 자신이 해야 했지만 하지 못한 일로 심장이 갈가리 찢어지는 것 같았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안두인은 의지를 다졌다. 이제 다른 길은 없었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의심도 없었다. 후회도 없었다.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