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경
"아파! 아파! 아프다고!"
녹아내리던 소녀가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고 작업을 계속했다. 몸부림치는 소녀의 눈구멍으로부터 액화된 진균이 흘러나왔다. 마치 눈물을 흘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제 10살 전후 되어 보이던 소녀는 억울함에 사무친 듯 남자에게 다가갔다.
"왜 다들 날 미워하는 거지? 난 그저 가족을 원했을 뿐인데!"
가족을 꿈꾸는 소녀의 이야기
오래전, 소위 '회사'는 NEXBAS(차세대 실험적 전장 우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변종사상균'이라는 진균의 유전자를 여성 성별을 가진 태아에 주입. 배양했다. 웨스커의 사조직 H.C.F의 기술 지원 덕분이었다.
이블린은 그렇게 태어났다.
A~D까지의 실패작들을 거쳐 E 시리즈의 성공작으로 배양된 그녀는 한마디로 최신형 B.O.W였다. 항시 몸에서 변이유발 및 향정신성 환각 물질이 분비되는 그녀는 자신이 뿜어내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대상을 조종하거나 환상을 보도록 만들 수 있으며, 심지어는 감염자의 신체를 변이시킬 수도 있었다. 회사는 그녀들을 적진에 풀어놓아 혼란을 일으키는 광역 생화학 테러 병기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태생부터 생체 병기로 개발된 이블린
이블린은 성공작이었지만 아직 완성품은 아니었다. 주사를 맞지 못하면 일반인의 25배속으로 노화함과 동시에 주위의 유기물을 변종사상균으로 변이시키는 등 끔찍한 위험성이 내포되었기에 철저한 관리 및 통제가 필요했다.
미아 윈터스는 바로 그 관리를 맡은 특수작전부 소속 관리요원 중 한 명이었다. 2014년, 미아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블린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체크하며 회사의 결정에 따라 그녀를 대형 선박에 싣고 중앙아메리카 지부로 이송하고 있었다.
이블린의 관리자 '미아'
하지만 결국 관리에 허점이 생겨 사고가 나고 말았다. 이블린은 선박 내부를 지옥도로 만들어 침몰시킨 후 사라져버렸고, 미아는 정신을 잃는다. 한참 뒤 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린 곳은 선박 내부가 아닌, 근처 어느 농가의 감금시설이었다.
미 남부 루이지애나주 덜비 지역 외곽. 한적한 시골 농장을 운영하고 있던 베이커 가족은 우연히 난파된 선박 근처에서 쓰러진 소녀를 구출하여 집안으로 데려온다. 인정 많은 부부 잭 베이커와 마가리타는 우선 이블린을 씻기고 비어있던 작은 방에 데려다 놓았다. 몰아치는 폭풍우가 잠잠해지고 나면 도시에 데려다줄 심산이었다.
악몽의 시작
이블린의 변종사상균에 감염된 베이커 가족은 차례차례 미쳐갔다. 선량하고 책임감 강한 시골 아저씨였던 잭 베이커는 가족을 구타하고 고문하는 등 광기와 폭력성을 보이기 시작했고, 다정다감했던 아내 마가리타는 다른 선박 조난자들의 신체를 모아 식인 요리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들 부부가 공통적으로 보인 독특한 행동 중에 하나는 '가족'의 형태는 계속 유지했다는 것이다. 매일 식사 시간이 되면 베이커 가족은 다 함께 식탁 앞에 모였다. 때로 집 근처에 접근했다가 납치된 이웃이나 조난자들 역시 강제로 묶인 채로 손님 역할을 해야 했다. 그 가족의 중심에는 언제나 이블린이 있었다.
나름 화목(?)한 좀비 가족
베이커 부부에겐 아들과 딸이 한 명씩 있었다. 그중 아들 루카스 베이커는 이블린의 마인드컨트롤과는 별개로 원래부터 뒤틀린 인격을 감추고 있는 소시오패스였다. 공학도로써 뛰어난 지식을 갖춘 루카스는 자신의 폭력적 성향을 영리하게 감추어왔고, 따라서 베이커 부부는 아들을 가벼운 정신장애 정도로만 여겼다. 이블린이 들어오고 부모가 미쳐버린 후에야 루카스는 비로소 자신의 악마적 기질을 유감없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신이 마련한 소위 '게임'에 방문자들을 초대하여 사람을 장난감처럼 다루고 살해하는 등 여기에 변종사상균에 의한 신체변이 능력까지 더해지자 그의 게임 방법은 갈수록 과감하고 잔인해져갔다.
'회사'는 그를 흥미롭게 여겼다. 사고 현장 파악을 위해 베이커 농가에 접근한 관계자들은 사태를 수습하지 않고 오히려 실험을 위해 루카스에게 정신지배 면역을 부여한 후 방치했다.
게임을 즐기는 소시오패스 공학도 '루카스'
베이커 부부의 딸 조이 베이커는 이 모든 일이 악몽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당장 이블린의 정신지배 대상이 되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단란했던 가정이 끔찍한 모습으로 붕괴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봐야 했다.
그러던 중 조이는 우연히 농가에 감금된 미아의 일지를 통해 대강의 사태 파악과 함께 그녀가 가지고 온 백신을 만들 수 있는 '혈청'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블린 이전의 실패작 A~D 실험체의 신체조직으로 만들어진 그것은 베이커 부부에 의해 숨겨졌지만 저택 내부에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했다. 비록 정신지배는 완전히 당하지 않았더라도 몸은 이미 감염되어 언제 망가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던 조이는 매일 밤 미쳐버린 부모와 오빠, 이블린의 가족놀이에 장단을 맞춰주며 몰래 혈청을 찾아다녔다. 무려 3년 간이나.
도망치려하거나 가족놀이에 동참하지 않으면 바로 끌려와 죽도록 쳐맞는 생활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7년 7월. 한 남성이 베이커 저택 안으로 발을 디딘다. 3년이나 행방불명된 아내 미아를 찾으러 온 그녀의 남편 에단 윈터스였다.
호러 장르로의 귀환을 위해 일반인을 플레이어 캐릭터로 정한 바하7
그가 베이커 저택에 찾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새로운 아빠 역할이 필요했던 이블린이 미아를 정신조종하여 남편 에단에게 편지를 보냈던 것. (※ 조이가 외부의 도움이 필요해서 가짜로 꾸며 연락한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하지만 폐가가 된 베이커 저택 안에서 만난 아내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여.. 여보? 잠깐만;; 내 카톡 본 거야?
칼을 들고 달려드는 아내로부터 간신히 도망친 에단은 결국 도끼로 그녀의 머리를 박살내고야 말았다. 하지만 미아는 그럼에도 죽지 않았다. 그녀는 급기야 전기톱을 들고 달려들어 결국 남편의 손목을 잘라내고야 만다.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에단은 저택의 온 사방이 다 쉽게 탈출할 수 없도록 폐쇄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출구를 찾기 위해 길을 헤매던 에단은 결국 잭 베이커에게 두들겨맞고 어딘가로 끌려간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에단이 눈을 뜬 곳은 베이커 가족의 식사 테이블이었다.
자, 밥 먹자~♡
이미 감염이 시작된 에단의 잘린 손목은 어느새 다시 연결되어 있었다. 누군가 스테이플러로 대충 찍어 붙인 몰골이었다. 테이블 앞에는 베이커 부부와 루카스 외에도 한 노파가 휠체어에 앉아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베이커 부부의 노모이리라 에단은 생각했다. 곧 마가리타에 의해 썩은 내장을 먹을 것을 강요받던 에단은 다행히 때마침 저택 현관에 찾아온 보안관이 가족의 이목을 끄는 사이 포박을 풀고 테이블에서 도망쳤다. 물론 보안관은 잭이 내려친 삽에 의해 머리가 쪼개진다.
이후 에단은 저택 내부 전화로 정보를 전해주는 조이의 조언에 따라 상황을 파악하고 저택 내부에서 혈청을 찾는 한편 자신을 쫓는 베이커 가족을 하나씩 무력화해 나갔다. 루카스가 마련해놓은 살인 게임마저 돌파해낸 에단은 다시 정신을 차린 아내 미아와 조이를 구해낸 후 마지막 남은 혈청주사 1개를 누구에게 투여하고 함께 탈출할지 결정해야 했다. 에단은 당연히 아내 미아에게 혈청을 투여했고, 이후 작은 보트를 타고 함께 저택을 벗어났다. 조이는 좌절한 얼굴로 저택 안에 남았다. (※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루트가 조금 달라진다. 상식적으로 대부분 아내를 선택하겠지만 정 어린 여자가 좋다면 조이에게 투여해보자. 이후 루트는 둘째 치고 당장 아내의 엄청나게 실망한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저택을 벗어나던 에단은 결국 이블린에 의해 보트가 뒤집혀 근처 선박으로 납치당한다. 정신을 차린 미아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오래전 자신이 탑승했던, 이제는 유령선으로 변한 선박 내부로 향했다. 3년 전의 기억을 되살려가며 난파한 선박 내부를 수색하던 미아는 투여받은 혈청주사의 힘으로 이블린에게 저항하며 마침내 에단을 탈출시키는데 성공한다. (※ 만약 이전에 조이를 선택했을 경우, 보트가 뒤집힐 때 조이는 백화 되어 소멸하며 선박 내부를 수색하던 미아는 흑화 된 남편 에단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다.)
미아 덕분에 난파선을 빠져나간 에단은 미아가 준 이블린의 조직 샘플로 'E-네크로톡신'을 제조한다. 그것은 이블린의 힘을 무력화할 수 있는 유일한 물질이었다. 다시 베이커 폐가로 돌아간 에단은 마침내 이 모든 사태의 원인, 이블린의 환영과 조우한다.
안녕, 오빠? 나 보러 다시 왔어?
에단이 가진 E-네크로톡신을 감지한 이블린은 저주를 퍼부으며 격렬히 저항했다. 다들 자기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지 이블린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가족을 갖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저 조금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블린은 떼를 쓰듯 계속해서 울부짖었다.
"왜 다들 날 미워하는 거야! 왜!!"
곧 에단의 E-네크로톡신이 그녀에게 주입되자 환영이 사라지고 그녀의 정체가 드러난다. 사실 에단이 저택을 헤매는 동안 내내 보았던 휠체어의 노파가 바로 이블린의 본모습이었다.
실제 나이는 어린 것 맞다. 단지 빨리 늙은 것.
이블린은 주사를 끊고 관리를 받지 않을 경우 무려 25배의 속도로 노화하는 몸이었다. 따라서 불과 3년 만에 이블린의 몸은 완전히 늙어 환각을 통해서만 존재감을 보일 수 있었다.
눈구멍에서 검은 진균을 쏟으며 흐느끼던 이블린은 최후의 발악으로 변이를 일으켜 저택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에단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며 소지한 권총으로 쫓아오는 거대괴물을 쏘아보았지만 통할 리 만무했다. 결국 에단은 사지가 꿰뚫린 채로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고 만다. 그때, 기적과도 같이 그의 눈앞에 한 남자가 나타나 도움을 준다. 크리스 레드필드였다.
헬기를 타고 마침내 등장한 먼치킨
에단은 크리스가 던져준 Albert-01로 이블린을 쏘았다. 그러자 거대화되었던 이블린의 신체 조직이 돌처럼 굳으며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크리스는 현장을 지휘하며 상황을 수습한 후 도망친 루카스 베이커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에단은 헬기에 태워졌다. 놀랍게도 헬기엔 생존한 미아가 건강한 안색으로 들것에 누워 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전에 조이를 선택했다면 당연히 미아는 없다.
'난 미아를 잃었다는 걸 막 받아들인 참이었지. 하지만 그녀는 이제 돌아와 다시 시작하길 원해. 이 모든 일을 잊고 말이지. 이게 바로 또 다른 열린 문인 것 같아.'
잠든 미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에단은 생각했다. 너무도 끔찍한 경험이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살아남았다. 이제 다시는 이런 일은 겪지 않으리라. 그들을 태운 헬기는 수평선 너머 황혼을 향해 곧장 날아갔다. 다만, 헬기에는 엄브렐러의 로고가 그려져 있었다.
헬기에 선명히 그려져 있는 엄브렐러의 로고
크리스는 곧장 루카스가 도망친 광산으로 진입해 그를 처리했다. 그리고 에단의 제보를 토대로 혼자 남았던 조이까지 구출해냈다. 임무 도중 크리스는 엄브렐러사의 로고가 박힌 첨단 장비들을 사용했는데, 이를 매우 어색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BSAA의 요원 크리스는 엄브렐러와 협력하는 것에 여전히 불신을 갖고 있었다.
왜인지 엄브렐러의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크리스
사실 엄브렐러는 미국서 발효된 기업 회생법으로 재건된 상태였다. 단, 구 엄브렐러 시절의 부(負)의 유산을 청산하는 것이 그 조건이었고, 그런 취지에서 엄브렐러는 대BOW부대의 편성 및 무기 개발에 앞장서며 BSAA와 같은 일선 부대에게 장비를 제공 및 협력했다. 현 구성원 역시 과거의 인적들이 아닌 2007년 PMC로 바뀐 이후 가입한 인물들이며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유지한 채 민간군사기업으로 변모했다.
뭣보다 새로운 엄브렐러의 로고는 더 이상 붉은색이 아닌 푸른색이었다. 이는 엄브렐러가 생물병기의 원흉이었다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부활한 엄브렐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