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노어> -11년
오크 부족 대부분은 호전적인 성향을 띠었다. 규모가 크고 강력한 부족일수록 그랬다. 하지만 <서리늑대 부족>은 달랐다. 그들의 족장 가라드는 다른 오크 전사들과 달리 대지와 조화를 이루며 공동체를 중시하고 내면의 분노를 잘 다스릴 줄 아는 것을 긍지로 여겼다. 그에겐 세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특히 막내아들 듀로탄이 이를 잘 따랐다.
영화 <워크래프트>의 주인공 '듀로탄'
사실 듀로탄이 처음부터 그런 성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릴 적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에서 다친 어머니를 공격하는 맹수들의 공격에 맞서 싸운 일이 있었다. 이때 피의 욕망에 휩쓸려 수호늑대마저 죽이고 어머니의 목소리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던 듀로탄은 이후 자신이 죽인 수호늑대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과거를 상기하며 내면의 분노를 다스리는데 온 힘을 다했다.
광기에 휩쓸렸던 듀로탄의 과거
하지만 가라드의 첫째 아들 펜리스는 이러한 서리늑대 부족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밤마다 몰래 늑대 가면을 쓰고 밖으로 나가 천둥군주 부족들과 함께 광기 어린 그론 사냥을 즐겼다. 천둥군주 부족의 기치인 용기와 무용을 무엇보다 가치있게 여겼기 때문이다. 펜리스는 곧 '강철늑대'라는 별명으로 주변에 널리 알려졌고, 펜리스 본인도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가라드는 그러한 첫째 아들의 행보를 지속적으로 비난했다. 이를 참을 수 없었던 펜리스는 급기야 아버지에게 '막고라(목숨을 건 결투 의식)'을 신청했고, 규정상 막고라를 거부할 수 없었던 가라드는 이에 응하여 승리하긴 했지만 아들을 죽이지는 않았다. 이를 오히려 더 수치로 여긴 펜리스는 결국 서리늑대 부족을 떠나 천둥군주 부족으로 귀의한다.
이후 가라드는 오우거 부족과의 전쟁 중 둘째 아들을 잃고 얼마 안 가 자신도 전염병에 걸려 사망했다. 이로 인해 듀로탄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서리늑대 부족의 족장이 된다.
서리늑대 부족을 떠난 펜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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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단편 만화 <피와 번개>
<검은바위 부족>은 드레노어의 희귀 금속인 검은바위 광석을 독점한 덕분에 제련 기술에 통달하여 매우 뛰어난 장비를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의 족장 블랙핸드는 이러한 이점을 기반으로 자신의 부족을 오크 부족 중 가장 크고 조직적인 부족으로 만들었다. 블랙핸드 본인 역시 오크 전사들 중 무력만큼은 가장 뛰어난 전사로 알려져 있었다.
이밖에도 검은바위 부족에는 현명한 부관 아이트리그, 간신배 말코록, 용맹한 형제 브록시가르 사울팽과 바로크 사울팽 등 뛰어난 전사들이 많았으며 듀로탄의 어릴 적 친구 오그림 둠해머는 블랙핸드가 총애하는 검은바위 부족의 부사령관이었다.
강력한 <검은바위 부족>의 전사들
둠해머 가문에는 위대한 힘이 담긴 무기가 전해져 내려왔다. 이름 그대로 '둠해머'라는 이름을 가진 망치였다. 둠해머는 가문의 마지막 자손이 오크 부족에게 파멸을 가져올 것이지만, 이후 그 망치를 물려받은 자가 오크를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재건시킬 거라는 전설을 갖고 있었다.
검은바위 부족의 2인자 '오그림 둠해머'
오그림이 아직 어릴 적, 그의 아버지가 교만에 빠져 둠해머를 정령들에게 뺏긴 일이 있었다. 강력한 힘을 가진 무기 둠해머는 당시 한창이던 오우거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으므로, 블랙핸드는 죽음을 무릅쓰고 정령들의 용암 속에서 둠해머를 꺼내들었다. 정령들은 오로지 부족을 위한 이타적인 감정을 느끼고 블랙핸드가 둠해머를 다시 가져가는 것을 허락했다. 덕분에 오우거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블랙핸드는 망설임 없이 망치를 둠해머 가문에게 돌려주었다. 이때 블랙핸드는 용암에 손을 담근 탓에 한 손이 검고 단단하게 변했는데, 그가 블랙핸드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블랙핸드의 검은 손에 들려진 전설의 무기 '둠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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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단편 만화 <블랙핸드>
오크 전사들 중 무력이 가장 뛰어난 자로 블랙핸드와 함께 이름이 꼽히는 인물이 한 명 더 있었다. <전쟁노래 부족>의 족장 그롬마쉬 헬스크림이었다. 대단히 호전적이고 난폭한 성격을 가진 그의 부족은 비록 규모는 검은바위 부족보다 작았지만 뛰어난 기동력과 전투력으로 나그란드의 잔존 오우거들을 평정하고 그 일대를 차지했다. 그롬의 아들 가로쉬 헬스크림은 그런 아버지를 존경했다.
<전쟁노래 부족>을 이끄는 '그롬마쉬 헬스크림'
호전적인 성향을 띤 검은바위 부족과 전쟁노래 부족과 달리 <어둠달 부족>의 족장 넬쥴은 매우 지혜로운 자였다. 그는 모든 부족에게서 존경을 받았는데 그것은 분화된 오크 종족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다. 넬쥴은 모든 주술사의 조언가로 활동하면서 여러 부족 간 느슨한 유대를 강화하고 유지하고자 힘썼다.
지혜로운 <어둠달 부족>의 족장 '넬쥴'
오우거의 노예 출신이었다가 스스로 손을 자르고 탈출하여 일대 노예들을 해방시킨 카르가스는 <으스러진 손>이라는 새로운 부족을 만들고 '칼날주먹'을 뜻하는 블레이드피스트라는 이름을 얻었다.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자신의 죽음에 관한 계시를 받은 킬로그 데드아이는 나약한 아버지를 살해하고 새 족장으로 오름으로써 쇠락했던 <피눈물 부족>을 일으켰다.
신흥 오크 부족의 리더들
한편 이렇게 각각의 오크 부족들이 드레노어에서 세력을 잡아가는 동안, 그들을 지켜보는 자가 있었다. 불타는 군단의 2인자 킬제덴였다.
그동안 킬제덴은 자신의 옛 동족이었던 벨렌과 드레나이를 추적하고 있었다. 마침내 드레노어 행성에서 그들을 찾아낸 킬제덴은 겸사 그곳에 있는 오크 종족에게도 관심을 두었다. 살게라스가 찾으라 명령한 어떤 '적당한 종족'이 되어줄 것 같아서였다.
살게라스는 두 번째 아제로스 침공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는 우선 아제로스의 강력한 생명체를 하나 찾아 자신의 영혼을 심어 다음 침공을 위한 그릇으로 쓰고자 했다. 그것이 에이그윈이었고, 메디브였다. 또한 불타는 군단이 두 번째 침공을 시도할 때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도록 아제로스의 세력들이 분열돼있길 바란 살게라스는 자신의 수하들로 하여금 우주를 뒤져서 적당한 종족을 타락시켜 군단에 편입하라 명령했다. 아제로스 분열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아키몬드와 달리 책략가 타입인 악마 '킬제덴'
킬제덴은 우선 오크들을 타락시키기 위해 이용할 대리인을 물색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적당한 후보자는 변방의 작은 오크 부족에 있었다. 이름 없는 소규모 부족에서 태어난 그 작은 오크는 선천적으로 허리가 휘는 장애를 갖고 있었다. 그의 뒤틀린 육체가 불길한 징조라고 여긴 그의 부족은 그를 추방했고, 쫓겨난 그는 야생에서 홀로 생존을 위해 싸워야 했다. 오랜 경멸과 굶주림에 지쳐 죽음의 문턱까지 몰린 그는 마지막으로 신성한 정령의 옥좌를 찾아 무릎 꿇고 간청했다. 이 고통을 끝낼 수만 있다면 그들을 섬기겠다고. 하지만 정령들은 굴단의 마음에서 어둠을 감지하고 그의 부족이 그랬던 것처럼 그를 거절했다. 뒤틀린 오크는 슬픔에 휩싸였다. 온 세상이 그를 버렸다. 그는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것도 아니었다.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오크
킬제덴은 절망에 빠진 먹잇감에게 다가가 그의 마음에 속삭였다. 킬제덴은 뒤틀린 오크를 누구도 다시 동정하거나 지배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존재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신처럼 강력한 능력을 얻어 그를 모욕했던 이들을 모두 벌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막강한 힘에 대한 대가는 오크 종족을 타락시키고 이를 무기 삼아 드레나이까지 멸망시키는 것이었다.
뒤틀린 오크는 이 어둠의 계약에 동의했다. 그는 자신의 종족을 경멸했다. 그들의 관습과 전통은 자신에게 고통만 안겨주었다. 신과 같은 능력이 오크 종족을 조종하는 것이라면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킬제덴은 뒤틀린 오크에게 지옥 마법을 구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뒤틀린 오크는 불안정한 지옥 마법을 생각보다 빠르게 습득했다. 그렇게 최초의 오크 흑마법사가 탄생했다. 굴단, 그의 증오와 복수심은 킬제덴의 상상 이상이었다.
오크 최초의 흑마법사 '굴단'
굴단이 처음 행한 일은 정령의 옥좌를 지옥의 마력으로 물들이는 일이었다. 이 여파로 드레노어의 땅은 황폐화되고 숲과 밀림은 끔찍한 눈보라와 얼음으로 뒤덮였다. 강과 개울이 바닥을 드러내며 갈라지고 사냥감들이 죽어나갔다. 때문에 오크들은 식수와 식량 부족, 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주술사들의 능력으로도 상황을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또한 굴단은 치명적인 전염병을 퍼뜨려 몇 달 만에 수백 명이 넘는 오크가 목숨을 잃도록 만들었다. 서리늑대 부족의 족장 가라드를 사망하게 만든 전염병도 이 때문이었다.
굴단이 다음으로 한 일은 자신의 옛 부족으로 돌아가 마을을 잿더미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렇게 과거를 지운 굴단은 어둠달 부족에게 접근해 오우거가 자신의 마을을 파괴하고 주민들을 몰살시켜 자신만 살아남았다고 했다. 이를 가엾게 여긴 어둠달 부족의 족장 넬쥴은 굴단을 부족의 일원으로 받아주었다. 굴단이 노린 것은 바로 그 넬쥴이었다.
넬쥴은 현명한 자였지만 마음의 틈을 갖고 있었다. 수년 전 넬쥴은 사랑하는 아내 룰칸을 잃었다. 넬쥴은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였지만 최근 드레노어를 잠식한 정령의 혼란은 그의 오랜 상처를 일깨웠고 때문에 넬쥴 내면에 혼돈과 슬픔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굴단은 넬쥴 내면의 어둠을 공략했다. 긴 시간을 들여 넬쥴의 신뢰를 얻고 가까운 사이가 된 굴단은 넬쥴의 꿈에 룰칸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드레나이가 오크를 전멸시키려 한다는 경고를 전했다. 현명한 넬쥴은 꿈을 경계했다.
어둠달 부족의 주술사가 되어 넬쥴을 홀리기 시작한 굴단.
굴단은 다음으로 작은 오크 마을 <칼바람 부족>에 접근해 최근 일어난 전염병과 재앙이 드레나이의 탓이라며 분노를 종용했다. 어둠달 주술사를 신뢰하던 그들은 굴단의 말을 그대로 믿고 드레나이의 짐마차를 습격해 무고한 드레나이들을 살해하고 수십 명을 포로로 잡아갔다. 이 소식을 들은 드레나이의 지도자 벨렌은 처음엔 즉각적인 대응을 자제시켰지만, 포로들마저 학살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후로는 동족들의 분노를 막지 못했다. 곧 칼바람 마을엔 피바람이 불었고, 살아남은 소수의 오크들은 어둠달 골짜기로 도망쳤으나 목적지에 이른 이는 없었다. 굴단이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전하지 못하도록 생존자들을 살해했기 때문이다. 이제 굴단이 전하는 이야기만이 유효했다.
굴단은 즉시 어둠달 부족에게로 돌아와 자신이 목격한 참사를 전했다. 드레나이가 칼바람 마을을 상대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유 없는 학살을 감행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끔찍한 사건에 관한 소문이 오크 부족들 사이에 퍼져 갔다. 넬쥴 역시 자신이 꿈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맞아들어가자 굴단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곧 넬쥴은 오크 부족장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유명한 오크 지도자들이 신성한 오슈군의 수정산 그늘 아래 모였다. 블랙핸드, 그롬마쉬 헬스크림, 킬로그 데드아이, 카르가스, 오그림 둠해머, 듀로탄. 그리고 천둥군주 부족의 족장이 된 펜리스도 함께였다. 넬쥴은 최근 일어난 각종 이상 기후와 전염병, 칼바람 마을 습격이 모두 드레나이의 소행이라며 꿈에서 들었던 예언적 경고도 함께 전했다. 오크 지도자들은 밤새 토론을 이어갔고, 마침내 결론이 나왔다. 평화를 추구하는 흰발톱 부족과 서리늑대의 듀로탄은 반대했지만 투표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전쟁을 위한 오크의 대통합.
그날부터 그들은 호드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호드>의 첫 탄생
<드레노어> -7년
호드가 결성된 이후 굴단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는 우선 존경받는 어둠달 주술사인 테론고르를 포함한 일부 어둠달 주술사들을 흑마법사로 만들어 자신만의 조직 <어둠의 의회>를 만들었다. 그들이 처음으로 한 일은 넬쥴을 유폐하는 것이었다. 넬쥴이 오슈군에서 진짜 아내의 영혼을 만나 진실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어둠의 의회는 오로지 굴단에게만 충성했다.
굴단의 직속 조직 <어둠의 의회>
굴단이 다음으로 만든 조력자는 굴단과 비슷한 처지의 하프오크 소녀 가로나였다. 칼바람 부족 출신으로 오크와 드레나이 포로 사이에 태어난 혼혈 오크였던 그녀는 오랫동안 멸시를 받으며 성장하여 사나운 투사로 거듭났다. 그녀는 강인한 신체는 물론 뛰어난 지능과 언변도 갖추어 칼바람 부족의 포로들에게서 드레나이어를 익히고 부족원을 위해 종종 통역을 맡기도 했다.
칼바람 부족의 근거지가 드레나이에게 파괴된 후, 가로나는 근처 숲으로 도망쳤다. 당시 그녀에게서 큰 가능성을 보았던 굴단은 추방자의 괴로운 삶에 대해 공감을 보이며 그녀에게 접근했다. 가로나가 경계심을 내려놓자, 굴단은 어둠의 힘으로 가로나를 세뇌하여 암살자로 이용했다. 첫 타겟은 호드 결성 당시부터 평화 운운하며 잡음을 내었던 골칫거리, 흰발톱 부족의 족장 자그렐이었다. 가로나는 아무도 모르게 자그렐의 숨통을 끊었다.
암살자가 된 여성 오크 '가로나'
굴단의 세 번째 조력자는 오우거 부족에 있었다. 높은망치 부족의 오우거 마법사 초갈. 그는 머리가 둘 달린 오우거였다. 다만 가로나나 굴단과는 달리 오우거들은 그의 신체적 특징을 행운의 징조로 여겼다. 덕분에 초갈은 높은망치 부족에서 온갖 특권을 누리며 엘리트 코스로 비전 마법을 익혔고, 그를 추종하는 오우거 무리들도 많았다.
하지만 오우거 귀족들은 초갈의 그런 인기와 거만함을 경계했다. 급기야 그들은 초갈의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가까스로 도망친 초갈은 어둠의 의회와 만났다. 굴단은 초갈의 자유분방한 자신감과 끝없는 권력욕에 흥미를 느꼈다. 그는 초갈을 수제자로 삼아 지옥 마법의 비밀을 가르치고 불타는 군단의 존재에 대한 것까지 말해주었다. 초갈은 그 힘을 바탕으로 나그란드 지하 동굴에 은신해있던 창백한 오크들을 꼬드겨 <황혼의 망치> 부족을 창설했다. 창백한 오크들은 오랜 시간 나루 '크우레'의 공허의 에너지에 잠식되어 있었기에 초갈은 그 힘에도 주목했다.
굴단의 수제자가 된 '초갈'
얼마 후 블랙핸드가 호드 대족장의 자리에 오른다. 호드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당장이라도 드레나이들을 씹어먹을 것 같았다. 정령들은 오크들이 타락해가는 것에 분노하여 '불의 군주 사이루크'라는 하나의 존재로 융합해 오크들을 벌하려 했지만 오히려 굴단의 계략에 의해 정령 에너지를 뺏기고 파괴되었다. 이때 오크들과 정령 간의 연결은 완전히 끊어진다.
벨렌은 그동안 오크들의 배후에 킬제덴과 불타는 군단이 있음을 눈치채고 드레나이 병력을 샤트라스와 카라보르 사원으로 결집시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곧 전투에 굶주린 오크와 드레나이 사이에 전면전이 시작됐다.
오크와 드레나이의 격돌
드레나이들이 그동안 평화를 추구했다고 한들, 그들은 만만찮은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신체능력은 특별히 뛰어나진 않았지만 마법력과 기술력만큼은 아직 야만성을 벗어나지 못한 오크들과 비교를 불허했다. 굴단은 급기야 지옥 마법으로 어린 오크들까지 강화하여 전선에 투입시켰지만 전세는 교착 상태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이때 굴단은 한 가지 꾀를 낸다. 카라보르 사원 위에 떠돌던 검은 별, 나루 '크아라'를 추락시키는 방법이었다. 오래전 어둠에 굴복한 크아라의 육체에선 강력한 공허의 에너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둠의 의회는 합심하여 마력을 별에 집중시켰고, 그 여파로 공허 에너지의 기둥이 드레나이가 있는 곳으로 내리꽂혔다. 많은 드레나이 수호자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벨렌은 생존자들과 함께 간신히 탈출했다. 찬란했던 카라보르 사원은 공허의 에너지가 영원한 어둠을 채우게 되었다. 후일 그곳은 <검은 사원>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다.
카라보르 사원을 잃은 드레나이들
오크들은 승리를 자축했지만 굴단은 고민에 빠졌다. 드레나이의 전력은 생각보다 강했고, 그들의 최대 방어선인 샤트라스 주둔군과는 더욱 어려운 전투가 될 것이었다. 비록 카라보르 사원에선 검은 별을 이용해 승리할 수 있었지만 드레나이의 최대 방어선인 샤트라스엔 그런 것도 없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 답은 킬제덴이 주었다. 바로 악마의 피를 마시고 이계의 힘을 얻는 것.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타락의 길이었다. 그러나 굴단은 고민하지 않았다.
굴단은 오크들에게 힘을 부여하겠다며 부족들을 성채 부근의 산꼭대기로 불러 모으라 블랙핸드를 설득했다. 그는 블랙핸드에게 그저 지옥 마법을 구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고만 말했다. 블랙핸드는 부족에 소집을 명했고 그 사이 킬제덴은 엄청난 마력을 동원하여 검은 사원에 임시 차원문을 열었다. 곧 차원문을 통해 파괴자 만노로스라 알려진 지옥의 군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피 뽑으러 왔어염. 뿌우~
성채 가까이 솟은 산의 정상에서, 굴단은 모인 부족장들을 맞이했다. 굴단은 그것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은 채 만노로스의 끓어오르는 피 웅덩이를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초록색 액체가 오크에게 지옥 마법을 알려준 자애로운 존재의 선물이라고만 밝혔다. 굴단은 이제 그 존재가 오크에게 더 강력한 것을 주었으며 그 웅덩이의 액체를 마시면 신과 같은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에 좋은 매생이 선짓국이라오!
처음 나선 자는 그롬마쉬 헬스크림이었다. 언제나 대담했던 전쟁노래 족장은 주저하지 않고 만노로스의 피를 한껏 들이켰다. 오크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지켜보았다. 지옥의 마력이 그의 피를 타고 흐르자 헬스크림의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두 눈에선 지옥의 붉은빛이 선명하게 타올랐다. 전쟁노래 족장 헬스크림은 드레나이의 피를 탐하며 우렁찬 전쟁의 함성을 내질렀다. 이에 경도된 오크들은 앞다투어 피를 마셨다. 곧 그들의 몸에도 지옥 에너지의 기운이 피부와 뼈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피부색은 이미 예전과 같은 갈색이 아닌, 형형한 초록색이었다.
만노로스의 피를 마시는 것을 거부한 자들도 있었다. 듀로탄은 미리 넬쥴로부터 경고를 받아 경계하고 있었고, 오그림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껴 회피했다. 하지만 주위의 모든 오크들에게 악마의 기운이 퍼지자 그 영향으로 악마의 피를 맛보지 않은 이들 역시 피부가 초록색으로 바뀌고 말았다. 만노로스의 피를 마신 오크들은 모여든 현장에서 가슴을 두드리고 소리치며 드레나이의 죽음을 갈망했다. 대족장 블랙핸드는 즉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었다. 바로 그날 밤, 블랙핸드는 호드 전체에 샤트라스로 진격 명령을 내렸다.
악마의 피를 마시고 초록색 피부로 변한 오크들
샤트라스는 파멸할 운명이었다. 벨렌은 그것을 예견했다. 카라보르가 무너지고 수 주 동안 예언자 벨렌은 종말의 계시에 시달렸다. 샤트라스의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고 유독한 비가 내려 드레나이가 괴물처럼 뒤틀리는 광경이었다. 수천 명의 용감한 드레나이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린아이가 오크에게 난도질당했고 맹렬한 지옥의 불길이 드레나이의 사랑하는 안식처인 샤트라스를 집어삼켰다.
그 계시는 사실이었다. 굴단은 흑마법사들로 하여금 마법에 천연두를 혼합하여 공성 전차를 이용해 전염병을 샤트라스에 날려 보냈다. 폭탄은 샤트라스 성벽에서 터져 지저분한 안개를 만들어 냈다. 안개는 드레나이의 피부를 태우고 호흡을 방해했다. 붉고 진한 안개가 샤트라스의 흉벽을 휘감으며 접근하는 호드 군대의 모습을 가렸다. 안개가 샤트라스의 수호자들을 덮치는 동안 오크는 샤트라스 성벽의 틈을 통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흑마법사들은 킬제덴에게 배운 주문을 읊고 하늘에서 초록색 유성을 소환하여 샤트라스의 성루를 강타했다. 피가 강물처럼 흐르며 샤트라스의 거리와 사원과 정원을 적셨다. 학살에 굶주린 호드 앞에서 누구도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다. 많은 호드 병사의 시체가 드레나이 시체와 함께 나뒹굴었다. 오크 역시 큰 피해를 본 전투였다. 그러나 그들은 승리했다.
함락된 샤트라스
마라아드를 비롯한 일부 드레나이 수호자들은 피난민들을 데리고 도시를 빠져나갔다. 수천 명의 드레나이가 샤트라스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그러나 그 희생으로 많은 시민이 탈출할 수 있었다. 그들은 호드의 공격을 막기 위해 무덤의 도시 <아킨둔>으로 퇴각했다. 아킨둔은 드레노어에서 가장 신성한 드레나이의 성지였다. 그들은 아킨둔에서 조상들의 영혼을 불러내어 함께 호드에 맞섰다.
드레나이들의 드센 저항에 당황한 테론고르와 흑마법사들은 킬제덴이 가르쳐 준 새로운 지식을 이용해 마력을 모은 후 현실의 장막 너머로 내보냈다. 강력한 악마를 현실로 불러내어 적을 쓰러뜨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너무도 다급했던 나머지 전혀 다른 존재를 소환하고 말았다. '울림'이라는 이계의 정령이었다. 울림은 머나먼 우주 저편에서 드레노어로 끌려와 아킨둔에서 형체를 드러냈다. 울림의 도착과 함께 충격파가 일어 대지가 갈라졌고 무덤의 도시가 폭발하며 많은 드레나이가 즉사했다. 울림의 파괴적인 에너지는 물결처럼 퍼지며 아킨둔 주위의 숲을 휩쓸었다. 상황이 일단락된 후, 테론고르와 흑마법사들은 울림을 간신히 아킨둔 깊은 곳에 가두었다. 혹여 풀려날까봐 소수의 흑마법사는 계속 아킨둔에 남아 울림을 감시해야 했다.
피바람이 몰아친 아킨둔 요새과 검은 사원
이러한 계속된 여파로 일부 드레나이 생존자들은 결국 정신과 신체가 모두 변형되어 '뒤틀린 드레나이'가 되었다. 또 어떤 이들은 '잃어버린 드레나이'로 퇴화했다. 벨렌을 위시한 정상적인 생존자들은 피눈물을 삼키며 장가르 해에 있는 외딴 사원 <텔레도르>에 몸을 숨겼다. 굴단의 추적을 열심히 피한 덕분에 텔레도르의 생존자들은 안전할 수 있었다. 후일 그 일대는 바다가 마르며 <장가르 습지대>라 불리는 늪지를 형성한다.
장가르 해에 은신한 드레나이들
블랙핸드는 정찰병들을 내보내 드레노어를 샅샅이 뒤졌다. 강한 힘을 얻은 그들의 목표는 이제 드레나이뿐만이 아니었다. 킬로그 데드아이의 병력은 파랄론 섬으로 건너가 원시생물들을 학살하고 숲을 불태웠다. 헬스크림은 뿔뿔이 흩어져 있던 오우거들의 남은 세력도 마저 무너뜨렸다. 그동안 지옥 마법과 공허의 비밀을 모두 익힌 초갈은 높은망치 부족의 군주 마르고크를 찾아내 그들의 옥좌에 결박한 후 산 채로 불태웠다. 그밖에 그론, 오그론, 마그나론 등 남은 종족들도 거의 멸종에 가깝게 몰아붙였다. 그 선두엔 천둥군주 족장 펜리스가 있었다.
이제 드레노어에 남은 위협적인 세력은 아라크 지역 높은 곳 <하늘탑>에 사는 아라코아들이었다. 지능적인 그들 종족은 고대 에펙시스 기술을 재발견하여 하늘탑 위에 거대한 포를 만들었다. 그 기계는 태양의 불타는 힘을 동력으로 사용하여 호드로부터 그들 영토를 보호하고 있었다.
블랙핸드는 카르가스에게 아라코아 소탕을 맡겼다. 카르가스는 하늘탑 꼭대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타는 광선을 뚫기 힘들 것으로 판단하고 근처 테로카르 숲에서 조력자를 찾았다. 바로 추방된 아라코아들이었다. 이 날개 달린 생명체들은 하늘탑과 고위 아라코아를 증오했다. 카르가스는 그들을 이용해 도시 꼭대기의 기계장치를 파괴하고 하늘탑을 맹습했다. 심지어 그는 동맹이었던 추방된 아라코아들에게까지 곧바로 칼을 겨누어 아라코아 종족의 씨를 말렸다. 살아남은 극소수의 아라코아들은 세데크 골짜기 등 이곳저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은 호드에 대한 쓰디쓴 증오를 키우며 언젠가 동족의 피를 흩뿌린 오크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복수할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하늘탑을 비롯해 드레노어의 완전한 평정을 이룬 오크들
살게라스는 기뻐했다. 악마의 피를 주입받은 오크들은 불타는 군단에 버금가는 불굴의 군대였다. 그들은 살게라스가 찾던 완벽한 도구였다. 다만 지금의 오크들은 승리에 취한 탓에 오만해졌고 제멋대로 행동했다. 살게라스는 오크가 자멸의 문턱에 내몰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받아들일 만큼 절박해지기를 바랐다. 너무도 절박하여 다른 행성으로의 여행도 기꺼이 받아들일 만큼.
기나긴 침묵이 이어졌다. 킬제덴은 살게라스의 명령대로 굴단을 비롯한 그 어떤 오크와의 대화도 중단했다. 정령들도 응답하지 않았다. 그동안 지옥 마력 때문에 드레노어의 대부분 지역은 황폐한 사막으로 변모해 있었다. 타나안 밀림은 갈라진 황무지가 되어 붉은 모래와 뼈만이 나뒹굴었다. 다음 해엔 기아가 오크를 덮쳤다. 오크의 사냥감이었던 드레노어의 토착 동물들 대부분이 멸종할 지경에 이르렀다. 오크들은 세계의 상당 부분을 정복했으나 그 과정에서 드레노어를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서부에 위치한 호드의 요새 <지옥불 성채>만이 할 일을 잃은 채 상징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황폐해진 드레노어의 세계
굴단은 이러한 환경의 변화를 드레나이들의 탓으로 돌렸었지만 그들을 몰아낸 후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각해져 있었다. 당황한 굴단은 블랙핸드에게 킬제덴이 오크의 앞날을 선택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둘러댔다. 그러는 동안에도 오크들의 핏줄에선 여전히 피의 욕망이 타올랐지만 싸울 적조차 없었고, 식량과 식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몇몇 부족은 광기에 휘말려 서로에게 칼을 겨누기 시작했다.
굴단은 곧 블랙핸드가 자신을 살려두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드레노어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 어느 날 두건을 쓴 한 이방인이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메디브라 소개했다.
<아제로스> -1년
메디브는 수년 전 긴 잠에서 깨어난 후, 점차 타락해갔다. 첫 계기는 구루바시 트롤들과의 전쟁이었다. 대륙 남부에 위치한 인간들의 스톰윈드 왕국과 정글 트롤들의 구루바시 부족은 영토 문제로 지속적인 분쟁이 발생해왔다. 스톰윈드의 국왕 바라덴은 트롤과의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중했지만 그의 아들 레인 린은 생각이 달랐다. 결국 레인은 친구인 안두인 로서와 메디브와 함께 트롤 영토에 잠입했고, 이때 메디브는 자신도 정체를 모르는 강력한 어둠의 마력으로 트롤 영토 일부를 쑥대밭을 만들고 그들의 군주까지 살해하고 말았다.
이 일을 계기로 구루바시 트롤과 스톰윈드 간의 전면전이 벌어졌다. 연로한 스톰윈드의 국왕 바라덴은 이때 전장에서 죽음을 맞았다. 레인이 비통해 하는 동안, 메디브는 다시 한 번 정체 모를 자신의 힘을 끌어모아 스톰윈드 주변에 포진한 트롤들에게 불과 얼음의 비를 내렸다. 수많은 트롤들이 그의 강력한 마력에 휩쓸려 나갔다. 어느새 메디브는 자신의 힘을 즐기고 있었다.
자신에게 내재된 어둠의 마력을 깨달은 메디브
전쟁은 스톰윈드의 승리였다. 메디브와 그의 두 친구는 영웅이 되어 있었다. 레인은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왕에 올랐고, 로서는 장군이 되었다. 하지만 메디브는 자신의 힘을 제어하지 못한 것을 두려워하며 스톰윈드를 당분간 떠나있기로 결정했다. 새 거처는 얼마 전부터 꿈속에 나타난 여인이 줄곧 오라고 손짓했던 곳, <카라잔의 탑>이었다.
메디브의 새 은거처 <카라잔의 탑>
탑에 도착한 메디브는 곧 꿈속의 여인을 만날 수 있었다. 어머니 에이그윈이었다. 이후 메디브는 1년 동안 어머니로부터 수호자에 대한 의미를 비롯해 그녀가 전하는 모든 지식을 배웠다. 그 과정에서 메디브는 자신의 내면에 깃든 수상한 어둠에 대해 어머니에게 이야기했으나 그녀는 그것을 묵살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상, 그것이 그저 마력을 구사하는 부담이자 책임의 무게일 것이라 치부했다.
에이그윈이 자신을 쫓는 티리스팔 의회를 피해 다시 망명 생활로 돌아가고 난 후, 메디브는 다시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는 도서관의 책들 사이에 파묻혔다. 수많은 책들 중 그가 주목한 것은 고대의 전쟁에 관한 내용이었다. 서로 다른 종족들과 강력한 생명체들이 한데 모여서 막강한 불타는 군단에게 맞선 이야기. 메디브의 눈에 고대 전쟁은 아제로스 역사의 금자탑이었다. 어쩌면 아제로스에는 그러한 영광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됐다. 아제로스의 주민들은 수천 년 동안 분열되어 있었고, 대의와 단결이 사라진 자리에는 다툼과 논쟁만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자신이 경험했던 트롤과 인간의 분쟁도 그랬다. 별 의미 없는 이득을 위해 아제로스의 부족과, 국가와, 종족은 서로를 배척했다. 오래전 불타는 군단이 고대의 전쟁에서 멸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은 듯했다. 아제로스는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었다. 아제로스는 스스로 변화할 수 없었다. 절대로.
메디브가 오랜 마법 연구 결과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메디브의 책>
메디브는 급기야 공허의 어둠에 대비한 살게라스의 해결책과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다. 누군가는 아제로스를 분열시킨 모든 것, 즉 국가와 문화, 정부, 왕을 무너뜨려야 했다. 상황을 바꾸려면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다. 아제로스의 수호자 메디브는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자신이 하기로 마음 먹었다. 메디브는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우선 군대가 필요했다. 그는 수호자의 마력을 이용해 아제로스 너머 우주로 여행했다. 살게라스는 교묘하게 메디브를 조종하여 특정한 행성에 주의를 돌렸다. 드레노어였다. 메디브는 드레노어를 관찰하며 마침내 오크라 불리는 강력하고 호전적인 종족을 발견했다.
수년간 메디브는 오크를 지켜보았다. 그는 까마귀 모습으로 변신한 채 드레노어 대륙을 여행했다. 소수의 오크만이 그 작고 수상한 새에게 눈길을 주었을 뿐 누구도 그를 경계하지 않았다.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메디브는 굴단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호자의 마력으로 타 행성의 종족과 교신을 시도하는 메디브
메디브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오크들에게 거대한 마법의 차원문을 건설한다면 드레노어를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정복할 수 있는 풍요로운 땅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맛보기로 메디브는 그들에게 그 새로운 세계의 모습을 시각화하여 보여주었다. 깨끗한 강과 신록의 초원과 싱싱한 사냥감이 가득한 곳 아제로스. 굴단은 이 달콤한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굴단이 메디브를 신용한 것은 그에게서 악마의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이 방문객이 살게라스의 말을 대신하는 악마라고 생각했다. 킬제덴은 갑자기 사라졌지만, 불타는 군단은 자신을 인도하는 또 다른 전령을 준비해 보낸 것이리라. 메디브는 또한 굴단 개인에게 한 가지를 더 약속해주었다. 지금보다 더욱더 강한 힘. 메디브는 그것이 아제로스 어딘가에 있는 <살게라스의 무덤>에 있다고 했다. 굴단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즉각 드레노어에 존재하는 마법 지맥의 집중점을 찾았다. 그곳은 드레노어 동쪽 끝에 있었다. 굴단과 블랙핸드는 오크들에게 그곳에 마력 깃든 석조 골격을 건설하라 명했다. 군대가 지나가기 위해선 매우 거대한 관문을 지어야 했다. 생존에 필요한 자원이 있고 전투의 열망을 채울 수 있는 세계로 건너갈 수 있는 마법의 관문. 오크들은 열의에 차 빠르게 구조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것은 언제부턴가 <어둠의 문>으로 불렸다.
드레노어 동쪽 끝에 건설되는 차원문 <어둠의 문>
차원문이 어느 정도 완성되자 메디브는 아제로스에 있는 카라잔 동쪽 검은늪이라는 외딴 습지에 자리잡았다. 굴단과 함께 현실을 찢고 문을 여는 작업을 하기 위함이었다. 아제로스의 메디브와 드레노어의 굴단의 힘이 의식을 통해 하나로 결합되자 곧 어둠의 문이 빛을 내며 두 세계를 잇는 균열이 발생했다. 굴단은 그 작은 틈으로 우선 일부 작업병들을 보내 아제로스의 검은늪에도 석조 골격을 세우기 시작했다.
오크들을 아제로스로 불러들이는 메디브
이러한 균열의 파장을 느낀 에이그윈은 원인을 조사하다가 충격에 빠졌다. 자신의 아들 메디브가 불타는 군단의 악마들과 손을 잡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에이그윈은 조용히 카라잔의 탑으로 들어가 메디브를 설득해보고자 했다. 하지만 메디브는 이미 살게라스에 의해 정신을 완전히 점령당한 상태였다. 살게라스는 메디브의 사고와 기억을 억제하면서 모든 행동을 조종하고 있었다. 에이그윈은 살게라스와의 두 번째 대면을 통해 비로소 자신과 메디브가 느꼈던 내면의 어둠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되었다.
격노한 에이그윈은 메디브의 정신을 장악한 살게라스와 두 번째 대결을 펼쳤다. 수백 년간 수련해온 그녀의 마력은 인간의 몸을 빌린 살게라스로써는 쉽게 볼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메디브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선 살게라스의 명령을 저항하고 있었다. 불리함을 느낀 살게라스는 급기야 탑 주변의 인간 수백 명의 생명력을 흡수해 그 힘으로 에이그윈을 어딘가로 추방해버렸다. 전투가 끝나고 정신이 돌아온 메디브는 비록 살게라스에게 지배당하던 때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어머니와 전투를 벌인 기억은 남아 있었다. 메디브는 재빨리 어머니의 기운을 추적해봤지만 아제로스의 어느 곳에서도 그녀의 존재를 감지할 수 없었다. 또다시 마력의 통제를 잃었다고 생각한 메디브는 한동안 실의에 빠졌다.
에이그윈을 추방하고 다시 내면으로 숨어든 살게라스
바로 이때 카라잔의 탑에 들어온 불청객이 있었다. 굴단이 보낸 첩자, 하프오크 가로나였다. 메디브가 한동안 연락이 끊기자 굴단은 가로나를 보내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다. 메디브는 탑에 침입한 가로나를 즉시 사로잡았다. 하지만 죽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메디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존재였다. 가로나는 온전한 오크도, 온전한 드레나이도 아니었다. 게다가 몹시 총명했다. 인간 포로들을 통해 벌써 인간의 언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고 있었다. 메디브는 그녀에게 새로운 단어와 구절을 가르쳤고, 가로나는 그의 가르침을 빠르게 습득했다. 그러면서 언제든 원하는 때에 카라잔에 돌아와도 좋다며 가로나를 풀어주었다. 이를 전해 들은 굴단은 메디브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아예 가로나를 카라잔에 머물게 한다. 메디브를 이를 알면서도 내버려 두었다.
카라잔의 탑에 찾아온 손님은 한 명 더 있었다. 티리스팔 의회 <키린 토>에서 보낸 젊은 마법사 수습생 카드가였다. 의회는 스톰윈드에서 메디브가 활약한 뒤로 계속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관찰 결과 의회는 에이그윈에 이어 메디브 역시 자신들의 제어를 받는 수호자가 되리란 기대는 접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리고 괜한 적대감을 만들지 않기 위해 재능 있는 마법사 훈련생을 제자로 보내 그와의 연결고리를 만들고자 했다.
영화로도 잘 알려진 카드가의 풋내기 시절
메디브는 이 젊은 제자 역시 거부하지 않았다. 메디브는 어느 때보다 외로웠고, 카드가는 매우 영리한데다 지식을 갈망하고 있었다. 카드가는 강력한 마법사인 수호자 밑에서 수련할 기회를 얻은 것에 만족해했다. 비록 카라잔의 탑은 엉망이고 메디브는 놀랄 만큼 감정 기복이 심했지만 카드가는 메디브가 시키는 과제들을 빈틈없이 처리해냈다.
다만 카드가가 카라잔의 탑에 온 후로 가장 당혹스러웠던 건 가로나와의 만남이었다. 젊은 마법사는 그녀를 즉시 적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메디브는 친절하게 가로나를 맞이했다. 메디브는 카드가에게 가로나를 정중히 대하라고 당부했다. 당황한 카드가는 쉽게 그 당부를 지키지 못했고, 따라서 며칠 동안 카드가와 가로나는 곧잘 말다툼을 벌였다. 그러나 둘은 곧 우정을 키웠다. 오히려 메디브가 자주 자리를 비우는 통에 카드가는 스승의 행적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 워크래프트 코믹스에만 등장하는 '메단'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가로나와 메디브 사이의 자식이다. 수호자의 자식답게 엄청난 재능을 가진 먼치킨이지만 본작 게임에선 언급이 거의 없다. 후에 코믹스에 나오는 메단의 '행보'는 정사가 아님이 공식화되었지만 메단이라는 존재 자체가 부정되진 않았다.)
(오크+드레나이)+인간... 놀라운 성욕의 결과물(...)
한편, 아제로스와 드레노어 양쪽에서 만들어지던 어둠의 차원문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이로 인해 오크 군단은 드디어 아제로스에 첫 발을 디디게 된다. 사실상 불타는 군단의 두 번째 아제로스 침공이었다.
록타 오가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