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1차 대전쟁이 끝난 지 20여 년이 흘렀다. 그동안 얼라이언스는 쇠퇴하고 있었다. 더 이상 인간과 하이엘프는 서로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것은 같은 동부 왕국에 속한 길니아스와 스트롬가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호드와 같은 외부 위협이 없거니와, 데스윙의 딸 오닉시아가 인간 귀족의 모습으로 분하여 열심히 이간질한 덕분이기도 했다. 끝내 길니아스는 공식적으로 얼라이언스와 모든 군사 협정을 끊고 거대한 그레이메인 성벽을 건설하여 왕국을 고립시켰다. 바다를 삼면에 두고 자급자족하는 반도 국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트롬가드 역시 얼라이언스에서 탈퇴했으며 스톰윈드마저 내부의 갈등으로 고전했다.
리치왕은 비로소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지금이야말로 로데론에 언데드 역병을 퍼뜨릴 완벽한 시기였다. 리치왕은 본격적인 계획에 앞서 자신을 대신해 전장에서 활동할 강력한 대리인을 찾았다. 로데론의 왕자, 아서스 메네실이었다.
백성들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왕자 '아서스'
아서스는 타고난 전략가이자 전사였다. 항상 자신감이 넘쳤으며, 백성들을 아끼는 마음 또한 강하여 모두에게 인기가 높은 명실상부한 로데론의 차기 지도자였다. 그런 그의 위상은 리치왕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그를 타락시킬 수 있다면, 모든 일이 손쉽게 풀리리라.
리치왕의 충실한 하수인 켈투자드과 그의 교단은 우선 로데론의 농작물 보급지 <안돌할>에 오염된 곡물을 집어넣어 역병을 퍼뜨렸다. 역병은 삽시간에 퍼졌다. 치료제도, 물약도, 사제들의 신성한 마법도 무용지물이었다. 역병에 대한 소식은 곧 로데론의 수도로 전해졌으나 누구도 대처 방법을 몰랐다. 질병 자체는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더욱 끔찍한 것은 사망자들의 시체가 다시 일어나 사라진다는 흉흉한 소문이었다.
더 이상 사태를 지켜볼 수 없었던 국왕 테레나스는 자신의 아들 아서스가 이끄는 사절단을 안돌할로 파견했다. 달라란의 키린 토 역시 제이나를 파견했다. 그들의 임무는 역병의 원인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간만에 만나게 된 제이나와 아서스
아서스와 제이나는 곧 안돌할에 도착했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시체는 산을 이루고 있었고, 아직 살아있는 주민들도 서서히 발병하는 질병에 대한 공포와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때 그 지역에서 볼 수 있었던 평온함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야말로 끔찍한 참상이었다. 아서스는 주민들의 고통을 눈앞에서 바라보며 마음이 찢기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아서스의 백성이었다. 그들을 보호하는 것은 그의 책임이었다. 아서스는 백성을 파멸에서 구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노라고 맹세했다.
시간이 지나며 아서스와 제이나는 역병에 관한 의문점을 하나씩 풀어갔다. 역병은 안돌할에서 곡물 보급로를 따라 동쪽 숲 곳곳으로 전파되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추적한 끝에 일행은 흉흉한 소문이 진실이었음을 직접 경험한다. 그들은 걸어 다니는 시체들과 싸우며 나아가야 했다. 이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었다. 역병을 퍼뜨린 것은 켈투자드라는 자가 이끄는 인간 이교도들이었다. 역병의 배후에 인간이 있었다는 사실은 아서스의 마음에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아서스는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켈투자드와 추종자들을 추적하는 데 온 신경을 쏟았다.
리치왕은 하수인의 눈을 통해 아서스를 지켜보며 그를 노스렌드로 인도할 방법을 고심했다. 아서스 정도의 존재를 타락시킬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마검 <서리한> 뿐이었다. 아서스가 서리한을 집어 들게 할 수 있다면 그를 확실히 타락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서리한은 노스렌드의 얼음왕관에 있었다. 우선 그를 노스렌드로 유인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영혼을 흡수하는 룬검 <서리한>
아서스는 마침내 켈투자드를 찾아냈다. 켈투자드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죽음 이후에 더 강력한 존재로 되살아날 것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전에 그가 할 일은 그저 아서스에게 한 가지 정보를 전하는 것뿐이었다. 신성한 도시 <스트라솔름>에 자신이 섬기는 악마 말가니스가 있으며 그곳에도 곧 역병이 퍼질 거라는 정보였다.
스트라솔름은 인구가 무척 많고 로데론에게 있어 전략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도시였다. 또한 성기사단이 탄생한 신성한 장소이기도 했다. 만약 스트라솔름이 역병에 물들고 언데드에 뒤덮인다면 그것은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서스는 또 한 번 분노를 터뜨리며 켈투자드를 죽이고 즉각 스트라솔름으로 향했다. 어느새 아서스는 절망과 분노에 휩쓸려 광기마저 보이고 있었다.
점차 분노에 잠식되는 아서스
아서스와 제이나 일행은 서둘러 스트라솔름에 도착했다. 아서스의 스승 우서 경도 합류했다. 그러나 스트라솔름 주민들은 이미 안돌할의 오염된 곡물을 받아서 소비하고 있었다.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역병이 그들을 영혼 없는 언데드로 뒤바꾸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대로 두면 감염된 스트라솔름의 언데드들이 로데론 왕국을 비롯한 모든 인간들에게 역병을 퍼뜨리며 해를 가할 것이 뻔했다.
아서스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것은 피눈물을 머금지 않고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참혹한 명령이었다. 긴 장고 끝에 아서스는 스트라솔름을 불태우고 시민들을 모조리 죽이기로 결정했다. 아서스를 지원하러 왔던 우서 경은 그의 결정에 놀라 강하게 반대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했지만 아서스의 고집은 확고했다. 그간 역병을 쭉 조사해왔던 아서스는 이미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우서 경을 비롯한 몇몇 기사들은 아서스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등을 돌렸다. 제이나 역시 동참하지 않았다. 나머지 기사들은 결국 아서스의 명령을 수행했다. 그들로써도 견디기 힘든 임무였지만 더 많은 백성들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결정한 바를 강행했다.
곧 아서스와 그의 부하들이 스트라솔름을 휩쓸며 학살을 시작했다. 불길이 도시를 집어삼켰고 거리에서는 잿가루와 불씨가 솟아올랐다. 날카로운 비명이 공기를 갈랐다. 무고한 자들의 피가 자갈길을 흥건하게 적셨다. 노인, 여자, 아이들, 수많은 주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자신들이 존경했던 왕자와 기사들의 칼에 도륙 당했다.
피눈물을 머금는 아서스와 그를 떠나는 제이나
대학살의 현장에서 아서스는 말가니스와 조우했다. 이 학살극을 초래하게 만든 그 악마에게 아서스는 모든 분노를 쏟으려 했다. 그러나 말가니스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자신을 막고 싶다면 노스렌드로 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말가니스를 기필코 찾아 죽이겠다는 다짐을 한 아서스는 즉시 그를 쫓아 노스렌드로 향했다.
3일 후, 폐허가 된 스트라솔름에 제이나가 돌아왔다. 도시의 대부분은 불에 타고 형체만 남아 있었다. 거리에는 시신이 나뒹굴었다. 그녀는 이 비극적인 상황에 몹시 슬퍼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아서스는 앞으로 평생을 악몽으로 기억될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에 대한 연민과 후회는 그 후 오랫동안 제이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아서스를 노스렌드로 유인한 악마 말가니스
리치왕은 아서스가 눈치채지 않도록 신중히 그를 서리한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야 했다. 이를 위해 리치왕은 노스렌드의 탐험가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때마침 산속 도시 아이언포지에서 온 드워프 전사 무라딘 브론즈비어드가 이끄는 드워프 일행이 고대 유물을 찾아 노스렌드를 여행하는 중이었다.
무라딘은 카즈 모단의 왕위 계승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치보다는 모험을 좋아하는 타입이라 계승권을 포기하고 대륙을 떠돌며 모험을 해왔다. 또한 그에겐 아서스가 어렸을 때 로데론에 대사로 파견되어 아서스에게 무술을 가르친 과거가 있었다. 무라딘은 아서스에게 서리한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알릴 완벽한 전령이었다. 리치왕은 수하들을 통해 탐험가 야영지에 서리한에 대한 정보를 비밀스럽게 심어두었다. 예상대로 무라딘은 룬검에 이끌렸고 드워프들은 룬검을 찾기 위해 나섰다.
고결한 드워프 전사 '무라딘 브론즈비어드'
그 사이 아서스와 병사들은 <울부짖는 협만>이라 불리는 노스렌드의 지역에 상륙했다. 리치왕은 언데드들을 이용해 무라딘과 아서스 일행을 만나도록 유도했다. 그들은 그것을 우연한 조우로 생각했다. 사실 아서스는 고지식한 스승 우서보다는 시원한 성격의 스승 무라딘을 좋아했기에 그 우연한 만남을 매우 반가워했다. 예상대로 무라딘은 아서스에게 노스렌드 탐험의 목적과 서리한을 찾아 나선 최근의 여정에 대해 말해 주었다. 룬검에 대한 이야기는 왕자를 사로잡았다. 그것은 말가니스와의 전투에서 유용하게 쓰일 무기였다.
그러나 곧 로데론에서 반갑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왕실 특사가 아서스 왕자를 추적하여 테레나스 왕의 지시를 전했다. 부하들을 데리고 즉시 로데론으로 돌아오라는 내용이었다. 테레나스 왕은 우서 경으로부터 스트라솔름의 일을 모두 보고받은 상황이었다. 왕자와 그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은 왕의 명령을 받들어야 했다. 하지만 아서스는 지금 돌아간다면 다시 말가니스를 찾을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급기야 그는 아무도 모르게, 협만에 정착해두었던 배를 한 척도 남김없이 불태워버렸다. 부하들은 누구도 그것이 왕자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은 다시 배를 만들 때까지 노스렌드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말가니스와 언데드 무리가 왕자 일행을 공격해왔다. 언데드는 아서스가 전에 보지 못한 규모로 밀려들어왔다. 그것은 아서스 일행을 압도할 만큼 위협적이었다. 아서스의 유일한 희망은 이제 전설의 룬검 서리한을 찾는 것뿐이었다. 부하들이 언데드들을 상대하는 동안 아서스와 무라딘은 서둘러 서리한을 찾아 헤맸다. 오래 지나지 않아 그들은 어느 작은 동굴 속에서 마침내 서리한을 발견했다.
저주받은 룬검 <서리한>
무라딘의 상상과 달리 서리한은 불길한 이계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것은 저주받은 마검이었다. 무라딘은 아서스에게 서리한을 그냥 두고 돌아가자고 했다. 아서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에겐 말가니스를 처치하고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저주도 감내하겠다는 결의가 있었다. 아서스는 결국 서리한을 뽑아들었다. 서리한의 끔찍한 힘이 그의 몸을 타고 전해졌다. 피를 얼릴 듯이 차가운 기운이었다. 서리한은 기어코 아서스의 영혼을 집어삼켰다.
망설임 없이 서리한을 뽑아든 아서스
서리한이 뽑히자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동굴 속에서 날카로운 얼음 파편이 사방으로 날았고 그중 하나가 무라딘을 찔러 쓰러뜨렸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홀로 정신을 차린 무라딘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기억을 잃고 눈 덮인 황무지를 배회해야 했다. 다행히 그는 노스렌드에서 살아가는 드워프인 서릿결 부족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그동안 아서스는 서리한을 들고 돌아와 마침내 말가니스와 마주했다. 그의 귓가에 말가니스를 죽이라는 리치왕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사실 리치왕 넬쥴은 처음부터 킬제덴과 불타는 악마들에게 충성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들키지 않게 세력을 조금씩 확장하여 언젠가 자신에게 끔찍한 고통을 준 악마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리치왕의 의지대로 아서스는 말가니스를 서리한으로 단 칼에 베어 죽였다. 나머지 언데드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아서스의 부하들은 주군의 승리를 축하했으나 그것은 그들의 착각이었다. 아서스는 이미 로데론의 왕자가 아니었다. 그의 피부는 죽음처럼 창백했고 머리카락은 백골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아서스는 검을 들어 그대로 자신의 부하들을 학살했다. 서리한은 그들의 영혼을 마음껏 들이켰다. 아서스의 부하들은 그렇게 모두 죽음의 기사가 되었다. 왕자는 더 이상 노스렌드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언데드 군단 <스컬지>를 이끌고 로데론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완전히 타락해버린 아서스
아서스가 노스렌드로 돌아오는 동안, 무슨 일인지 동부 대륙에서 언데드가 물러나고 자취를 감추었다. 시민들은 이유를 모른 채 추측만 할 뿐이었다. 인간들 대부분은 그들의 사랑하는 왕자가 노스렌드에서 스컬지를 무찌르는 임무에 성공했다고 믿었다. 실제로는 리치왕이 아서스의 귀환을 준비하기 위해 스컬지를 물린 탓이었다. 그러면 아서스는 승리한 영웅으로 환영을 받으며 로데론 수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얼마 후 아서스와 몇몇 죽음의 기사들이 함께 로데론에 도착했다. 그들은 두건이 달린 망토로 창백한 피부와 여윈 몸을 가리고 있었다. 곧 수백 명의 시민들이 아서스를 환영하기 위해 수도에 모여들었다. 아서스의 도착에 맞추어 종이 울렸고 환희에 찬 군중은 장미꽃 잎을 던지며 아서스 일행을 환영했다. 아서스는 군중을 무시했다. 그는 기이한 침묵을 지키며 왕실에 들어섰다. 성대한 환대를 뒤로 한 채 아서스 일행은 주변을 봉쇄했다. 당황하여 이게 무슨 일이냐 묻는 테레나스에게 아서스는 말했다.
"왕위를 계승 중입니다. 아버지."
피로 물든 왕위 계승
아서스는 서리한의 첫 번째 제물로 로데론의 국왕 테레나스를 살해했다. 그와 동시에 로데론 곳곳에 숨어 있던 스컬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서스는 시민들을 향해 선포했다. 로데론은 멸망할 것이며, 새로운 질서가 탄생할 것이라고.
무너지는 로데론
곧이어 스컬지의 대대적인 침공으로 지옥도가 펼쳐졌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로데론은 이 날 완전히 멸망한다.
20년
대해 너머 칼림도어의 동부 해안에서, 고독한 누군가가 홀로 떠돌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녀의 비극적인 과거를 아는 이는 더욱 적었다. 그녀는 가장 위대한 티리스팔의 수호자 중의 한 명인 에이그윈이었다.
에이그윈은 자신의 아들 메디브와 아제로스에 일어난 일들을 자기 탓으로 생각하며 스스로를 비난했다. 호드의 침공, 1차 대전쟁과 2차 대전쟁의 참극, 끝내 살해당한 아들... 그녀는 이제 살아갈 의욕도 무엇도 없는 상태였다.
아들의 죽음 이후 홀로 떠돌던 에이그윈
그렇게 어두운 나날을 보내던 중, 그녀는 기이한 꿈을 꾸었다. 까마귀 깃털을 수놓은 망토 차림의 남자가 전할 이야기가 있다며 자신을 아제로스로 계속 불러달라는 꿈이었다. 에이그윈은 처음엔 군단의 술수라 생각하며 꿈을 의심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진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꿈속의 남자는 아들 메디브의 영혼이었다.
수년 전 목숨을 잃은 메디브의 영혼은 현실의 경계 너머로 표류하면서 그동안 아제로스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목격했다. 육체의 죽음 이후 살게라스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그는 아제로스 세계에 닥칠 일에 대해 경고를 현실에 전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가 로데론의 사람들과 이야기할 방법은 없었다. 아제로스에서 단 한 사람, 마법보다도 강한 유대감으로 연결된 그의 어머니 에이그윈만이 그와 닿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이를 알게 된 에이그윈은 지난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한동안 최선의 노력을 다해 메디브의 영혼을 불렀다. 그렇게 여러 달이 지나서야 그녀는 마침내 메디브를 아제로스로 소환하는데 성공했다.
살게라스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메디브의 영혼
메디브는 영혼이 되어 떠도는 동안 많은 것을들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뒤틀린 황천의 악마들의 정신에 접촉해 언데드 역병에 대한 사실은 물론, 군단이 역병으로 아제로스를 약화시킨 다음 어떤 일을 꾸미고 있는지도 알았다. 1만 년 전 고대전쟁 당시 파괴되었던 영원의 샘 대신 이용할 또 다른 매개체, 하이잘 산의 꼭대기의 거대한 세계수 놀드랏실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두 번째 영원의 샘이 그들의 다음 목표였다. 살게라스는 그 영원의 샘을 이용하여 불타는 군단의 모든 병력이 다시 아제로스로 침공할 수 있는 차원문을 열고자 했다.
메디브는 그것을 반드시 막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아제로스의 왕국들이 1만 년 전의 그때처럼 다시 단결하여 스스로 아제로스를 지켜야 했다. 메디브는 그 단결을 위한 촉매제가 되기로 맹세했다. 그것만이 자신이 생전에 저질렀던 일에 대한 속죄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에이그윈은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메디브의 소환 의식을 진행하면서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다. 그녀의 몸은 늙고 쇠약해졌고, 회복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회복을 한다고 해도 전처럼 젊어지거나 강력해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메디브는 홀로 나서야 했다. 시간이 부족했다. 언데드 역병이 로데론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후 메디브는 신분을 숨기고 자신을 '예언자'라 칭하며 세상에 다가올 위협을 경고했다. 모두가 동부 왕국을 떠나 고대의 땅 칼림도어를 향해 서쪽으로 가야 한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고. 메디브는 각 지역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은 물론 유력 왕국의 지도자들에게도 이러한 경고를 전했다. 당연히 대부분 그의 말을 무시했다. 그들은 신분 모를 예언자의 경고가 미치광이의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달라란의 안토니다스는 최근 기승을 부리는 역병이 마법의 성질을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유망한 제자인 제이나를 조사차 현장으로 보냈고, 로데론 역시 아서스 왕자를 안돌할로 보내는 정도가 다였다.
하이잘 산이 있는 서쪽 대륙으로 떠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메디브
메디브는 이처럼 인간들로부터 박대를 받았지만, 의외로 오크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대족장 쓰랄이 이끄는 신생 호드가 메디브의 말에 귀를 기울여준 것이다. 그동안 쓰랄은 포로수용소에서 많은 오크들을 해방시켰다. 하지만 그들은 거처가 없었고, 따라서 유랑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라면 얼라이언스와의 또 다른 전쟁은 불가피해 보였다.
그러한 불확실성의 시기에 메디브가 쓰랄을 찾아왔다. 쓰랄은 고민에 빠졌다. 그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군단이 오크 종족을 노예로 삼았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악마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오그림과 그롬 등 나이 많은 오크들이 군단이 오크 종족을 파멸로 이끈 과정을 쓰랄에게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다. 메디브의 말이 사실이라면, 쓰랄은 종족을 위해 악마들과 맞서야 했다. 게다가 오크들에겐 인간들과 부딪히지 않고 지낼 새로운 터전이 필요하기도 하던 참이었다. 다만 쓰랄은 이방인을 신뢰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래서 아제로스의 정령들에게 답을 구했다. 정령들은 즉시, 그리고 다급하게 이방인을 믿으라고 답했다. 쓰랄과 같은 주술사에게 그 이상의 확신은 필요하지 않았다. 곧 쓰랄과 신생 호드는 대해를 건너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칼림도어와 동부 대륙은 갈라진 후 오랫동안 교류가 없었기에 그들에게 칼림도어는 미지의 대륙이나 다름없었다.
칼림도어로 향하는 쓰랄의 신생 호드
한편 아서스가 로데론을 멸망시켰다는 소식은 빠르게 동부 왕국에 퍼져나갔다. 다른 얼라이언스 국가들은 그 소식을 믿기조차 어려웠다. 누구도 그러한 악몽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대부분 국가가 이런 상황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지켜만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달라란의 마법사들, 아이언포지와 맹금의 봉우리의 드워프, 놈리건의 노움, 인간 왕국의 병사들이 로데론에 모여 스컬지에 맞섰다. 심지어 얼라이언스와 동맹을 끊은 쿠엘탈라스도 언데드 퇴치를 돕기 위해 하이엘프 사제를 파견했다.
본격적인 3차 대전쟁의 시작
그러나 무엇도 스컬지를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의 강령술사는 쓰러진 적의 시체를 일으켜 세웠다. 누더기골렘은 걸어 다니는 공성 병기가 되어 얼라이언스 병사들을 짓밟았다. 지하마귀는 땅속에 잠복해 있다가 방심한 적들을 습격했다. 가고일과 서리고룡은 그리핀 기수를 비롯한 얼라이언스의 공중 병력을 상대했다. 그리고 아서스와 그의 죽음의 기사들은 스컬지의 가장 효과적인 무기였다. 그들은 강령술은 물론 무력을 사용하는 전투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단 한 명의 죽음의 기사만으로도 전투의 흐름이 스컬지 쪽으로 기울었다. 그중 발군은 단연 아서스였다. 아서스는 로데론의 지형에 익숙했고, 상대 얼라이언스의 전략에 대한 통찰력도 있었다. 얼라이언스는 맹렬히 저항했다. 그것은 그저 완고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압도적인 전력을 보이는 아서스의 스컬지
이 모든 상황을 지휘하고 있던 리치왕 넬쥴은 다음 계획에 앞서 우선 켈투자드를 되살리고자 했다. 켈투자드는 생전에 달라란의 마법사 중 한 명이었기에 달라란 침공에 큰 전력이 될 수 있었다. 또한 무엇보다 켈투자드는 군단의 악마들이 아닌 자신의 명령을 직접적으로 듣는 심복이었기에 반드시 살려야 했다. 그 역할은 아이러니하게도 켈투자드를 죽였던 아서스가 맡았다. 아서스는 리치왕의 명령에 따라 켈투자드의 유해가 있는 안돌할로 향했다. 이때 아서스는 켈투자드의 유해를 담기 위해 아버지 테레나스의 유해가 담긴 납골 단지를 빼앗아 챙겨왔다.
안돌할은 역병의 기운이 안개가 되어 해를 가릴 정도로 부패한 땅이 되어 있었다. 아서스는 그곳에서 자신의 옛 스승인 우서 경과 재회했다. 우서는 테레나스 국왕의 유해마저 능욕하려는 아서스에게 크게 분노했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은빛성기사단과 함께 아서스의 스컬지에 맹렬히 맞섰다. 그들은 아서스로서도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죽음의 땅에서 칼을 맞댄 스승과 제자
생전에 아서스가 우서를 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우서는 노련한 영웅답게 아서스를 최후까지 몰아붙였다. 그러나 우서는 자신의 제자를 죽이는 행위에 일말의 망설임을 갖고 있었다. 그 망설임의 대가는 컸다. 막판에 연민을 느낀 우서가 보인 틈을 아서스는 놓치지 않았다. 아서스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우서의 가슴에 서리한을 꽂아 넣었다. 그렇게 얼라이언스의 영웅 우서는 목숨을 잃었다. 아서스는 납골 단지에 담겨있던 아버지의 유해를 아무런 감정 없이 길바닥에 내버린 뒤 켈투자드의 유해를 담았다. 후일 안돌할이 있던 지역은 언데드의 소굴이 되어 <역병지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다.
아버지와 스승을 모두 거리낌 없이 죽인 패륜대장 아서스
리치왕은 자신의 대리인에게 다음 명령을 내렸다. 켈투자드의 유해를 단순한 언데드가 아닌 강력한 리치로 되살리기 위한 계획이었다. 그것을 위해선 강력한 비전 에너지의 원천이 필요했다. 리치왕은 그 유력한 장소를 알고 있었다. 바로 하이엘프의 왕국 안쪽 깊은 곳에 있는 <태양샘>이었다.
6일 후, 아서스는 스컬지 병력을 이끌고 쿠엘탈라스 왕국 외곽에 도착했다. 그들은 왕국 주변에 설치된 마법석 때문에 왕국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지 못해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걱정 없었다. 하이엘프 다르칸 드라시르가 아서스의 편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르칸은 본래 쿠엘탈라스 왕국의 고위 마법사였다. 그러나 강령술과 흑마법에 손을 대어 타락했고, 그러던 차에 아서스가 스컬지를 이끌고 오자 냉큼 그에게 붙었다. 다르칸은 아서스에게 길을 안내해주며 정보를 제공했다. 덕분에 아서스는 목표하는 태양샘에 한 발 더 손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하이엘프의 배신자 다르칸 드라시르
태양샘은 하이엘프의 고향을 영원한 빛으로 적셔주는 힘의 원천이었다. 하이엘프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엘프들은 샘을 반드시 지켜야 했다. 쿠엘탈라스의 국왕 아나스테리안은 엘프들을 총결집시켜 스컬지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 선봉에 선 자는 순찰대(엘븐 레인저) 총사령관 실바나스 윈드러너였다.
문제의 그녀, 실바나스의 등장.
실바나스는 윈드러너 3자매 중 둘째로, 2차 대전쟁에서 오크 호드가 쿠엘탈라스를 침공하고 숲을 불태울 때 자매들과 함께 최전선에서 싸운 자였다. 실종된 언니 알레리아의 뒤를 이어 순찰대 사령관직을 맡은 그녀는 왕국의 모든 마법사와 사제들을 실버문으로 집결시켰다. 그리고 자신은 정예 순찰대와 함께 실버문 외곽의 숲에 진을 쳤다. 원정순찰대라고 알려진 그들은 고도의 기동력을 자랑하는 경장갑 부대였다. 역사적으로 그들은 최전방을 지키며 쿠엘탈라스를 위협하는 모든 적에 맞섰다. 위험했지만 크나큰 명예와 영광이 따르는 역할이었다.
곧 아서스와 스컬지가 숲 안쪽으로 진입해 들어왔다. 실바나스의 순찰자들은 전면 공격을 감행했다. 전투는 격렬했고 뜨거웠다. 사실 스컬지의 규모는 순찰대를 훨씬 뛰어넘는 데다 다르칸의 배신 때문에 결국 전선이 뚫릴 것은 자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실바나스는 뛰어난 전략가였다. 그녀의 완강한 저항은 아서스의 분노를 일으켰다. 실바나스는 실버문의 수호자들에게 공성전을 준비할 시간이라도 벌어주고자 했다. 그것을 위해 실바나스는 직접 아서스 앞으로 나섰다.
실버문의 장엄한 첨탑을 뒤로하고 죽음의 기사 아서스와 순찰대장 실바나스가 격돌했다. 실바나스는 매섭게 공격했지만 며칠 동안의 격렬한 전투로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다. 그녀는 서서히 지쳤고 아서스는 빈틈을 발견했다. 서리한이 순찰대장의 몸을 가르며 그녀의 핏줄에서 생명을 쏟아냈다.
아서스는 실바나스에게 죽음 뒤의 안식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아서스는 자신에게 저항한 대가로 실바나스의 영혼을 빼내어 그녀를 언데드 밴시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스컬지 부대에 복속시켜 그녀가 자신의 썩어문드러지는 몸을 느끼며 영원히 고통받도록 만들었다.
아서스에 의해 밴시가 되어버린 실바나스
결국 스컬지는 실버문의 방어를 무너뜨렸다. 아나스테리안 국왕과 생존자들은 배를 타고 실버문 북쪽의 <쿠엘다나스 섬>으로 후퇴했다. 태양샘은 그곳에 있었다. 도시는 언제든 재건할 수 있지만 태양샘을 보호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아나스테리안은 스컬지에게 함선이 없음을 알고 언데드가 바다를 건널 수단을 마련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아서스는 함대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서리한이 있었다. 아서스는 쿠엘탈라스의 북부 해안에 도착하여 거품이 이는 바다에 서리한을 담갔다. 서리한 주위의 물이 얼어붙었고 얼음은 서서히 바다 너머로 퍼져나가 얼음의 다리를 만들었다.
바다를 얼음길로 바꾼 엄청난 서리한의 힘
더 물러설 길이 없었던 아나스테리안은 얼어붙은 해안에서 아서스와 맞붙었다. 아나스테리안은 펠로멜로른이라는 고대의 검으로 서리한을 상대했다. 두 자루의 검이 울부짖는 소리가 천둥처럼 하늘을 뒤흔들었다. 아나스테리안은 강했지만 아서스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아서스는 펠로멜로른을 부러뜨린 후 아나스테리안의 목숨을 거뒀다. 국왕뿐 아니라 이번 침공으로 쿠엘탈라스 왕국의 하이엘프 대다수가 목숨을 잃었다. 때마침 왕국 밖에 있었던 국왕의 아들 캘타스 선스트라이더와 소수의 하이엘프만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아서스는 곧장 태양샘에 다가가 켈투자드의 유해를 빛나는 샘 깊이 담갔다. 그리고 리치왕이 일러준 주문을 사용했다. 그러자 마침내 켈투자드가 강력한 리치로 되살아났다. 동시에 태양샘은 오염되어 버렸다. 부활한 켈투자드는 아서스에게 은밀히 속삭였다. 군단의 악마들이 아닌, 리치왕과 우리들만을 위한 다른 계획이 있다고. 그는 악마들을 믿을 수 없으며 스컬지 역시 군단이 아제로스를 차지하게 되면 버려질 소모적인 무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아서스는 동의했다. 악마들은 언제나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이대로 소모품으로 버려질 수는 없었다.
리치로써 부활한 켈투자드
그렇게 목표를 이룬 스컬지는 쿠엘탈라스에서 떠났다. 뒤늦게 폐허가 된 쿠엘탈라스에 도착한 캘타스 왕자는 참혹한 현실에 통탄했다. 그는 대체로 배타적인 다른 하이엘프들과 다르게 세상의 다른 종족들과 어울리며 세계를 배우고 싶어 했고, 그래서 달라란에 유학을 가있었다. 엘프들은 그런 캘타스를 원망했다. 그는 쿠엘탈라스를 지키지 않았다. 캘타스는 변명하지 않았다. 대신 앞으로 왕국의 재건을 위해 헌신하여 엘프들에게 인정받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그가 처음 한 일은 태양샘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태양샘의 타락한 에너지는 서서히 쿠엘탈라스와 그곳에 남아 있던 엘프들에게 침투하고 있었다. 캘타스는 오염된 태양샘이 더 이상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른 고위 엘프들을 설득해 샘을 파괴했다. 문제는 평생을 태양샘에 의지해 살아왔던 하이엘프들에게 샘의 부재는 매우 가혹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엘프들은 마력의 원천이 갑자기 없어지자 금단 증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며 엘프들은 중독의 고통으로 심신이 약화되고 무기력한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견뎌야 했다. 캘타스는 살아남은 엘프 생존자와 폐허의 잔재를 수습했다. 그리고 고향 땅의 참화에 슬퍼하며 전사한 이들을 기리는 의미로 자신들을 블러드 엘프라 개명했다.
살아남은 캘타스와 블러드 엘프들
로데론과 쿠엘탈라스가 함락되었다. 알터랙과 스트롬가드 역시 연이어 무너졌다. 얼라이언스가 흔들리고 있었다. 불타는 군단은 이제 동부 왕국에서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군대를 규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악마들은 대해를 지나 두 번째 영원의 샘을 차지할 계획이었다. 킬제덴은 침공의 기반을 닦았지만 직접 전쟁을 이끌 생각은 없었다. 그 영광은 킬제덴과 동급인 군단의 2인자, 파멸자 아키몬드의 몫이었다.
킬제덴이 어둠 속에서 적을 조종하는 책략가 타입이라면 아키몬드는 다혈질의 전투 사령관이었다. 킬제덴은 아키몬드와 소수의 군대를 먼저 아제로스로 소환하고자 했다. 그러나 강력한 대악마 아키몬드를 소환하는 차원문을 열기 위해선 아티팩트 <메디브의 책>이 필요했다. 한때 오크의 손에 의해 드레노어로 넘어갔었던 아제로스의 유물들 중 메디브의 책과 굴단의 해골은 카드가가 보낸 전령에 의해 간신히 다시 아제로스로 넘어올 수 있었다. 메디브의 책은 막대한 수호자의 마력 일부가 주입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어둠의 문을 창조하는 데 사용한 주문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 책에 깃든 에너지와 기록을 이용한다면 아키몬드와 군단의 선봉대를 아제로스에 불러들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달라란의 마법사들은 그 아티팩트들을 달라란 내부에 엄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따라서 아서스의 다음 목표는 달라란이었다. 스컬지는 달라란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이에 달라란의 수장이자 키린 토의 대마법사 안토니다스는 도시에 방어막을 형성하고 결사항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음 목표는 달라란이다.
20년
안토니다스는 후회하고 있었다. 오래전 자신을 찾아와 경고를 전했던 예언자의 말을 무시했던 것이 마음을 쓰리게 했다. 그 이방인은 미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말은 옳았다.
그러나 안토니다스는 이제 와서 서쪽으로 떠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키린 토의 지도자로서 달라란을 버릴 수 없었다. 달라란과 비전의 보관소를 보호하는 것은 그의 의무였다. 대신 이방인의 충고를 실행에 옮겨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인물이 있었다. 키린 토의 제자, 제이나 프라우드무어였다.
제이나는 망설였다. 그녀는 다가오는 스컬지 무리 속에서 아서스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제이나는 스트라솔름에서 그를 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했고 아서스를 구할 방법을 찾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안토니다스의 설득 끝에 그녀는 결국 스승의 말에 따르기로 한다. 제이나는 수일 동안 최대한 많은 수의 피난민들을 모았다. 거의 모든 얼라이언스 종족의 구성원이 그 무리에 속했다. 제이나는 그들을 데리고 마침내 긴 여정을 위한 배에 올랐다.
쓰랄에 이어 칼림도어 대륙으로 향하는 제이나
오래 지나지 않아 아서스의 스컬지 부대가 달라란 앞에 당도했다. 그들은 쿠엘탈라스에 뒤지지 않는 강력한 저항과 맞닥뜨렸다. 달라란 마법사들은 도시에 방어막을 펼치고 비전 에너지를 연속해서 퍼부으며 침입자들에게 파국을 선사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서스에게는 달라란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우군이 있었다. 그는 켈투자드의 지식을 활용해 달라란 내부 방어 시설을 우회했다. 그리고 메디브의 책이 보관되어 있는 보관함을 찾아 바로 나아갔다. 그곳에 안토니다스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마법사 안토니다스는 강했다. 비록 수호자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는 지혜롭고 재능이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러나 그 역시 아서스의 서리한의 힘을 당하지는 못했다. 안토니다스는 제자 제이나에게 희망을 걸며 아서스의 칼에 숨을 거둔다.
테레나스, 아나스테리안에 이어 죽음을 맞이한 안토니다스
아서스는 제이나가 달라란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러지 않다는 것을 알고서 의아해했다. 그러면서 아서스는 기이한 감정이 스치는 것을 느꼈다.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던 과거 삶의 한 조각이었다. 아서스는 제이나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 감정은 다가온 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졌다.
아버지랑 스승은 아무 거리낌 없이 죽이더니;
아서스는 메디브의 책이 간직된 보관함을 파괴하고 유물을 차지했다. 다른 많은 유물이 메디브의 책과 함께 놓여 있었다. 그중에는 굴단의 해골도 있었다. 이때 아서스를 감시하던 군단의 악마 티콘드리우스는 굴단의 해골이 내뿜는 지옥 에너지의 오라에 이끌려 그것을 함께 훔쳐냈다.
킬제덴 휘하의 군단의 3인자 티콘드리우스는 영리하고 눈치가 빠른 지략가 타입의 대악마였다. 그는 킬제덴의 명령으로 리치왕 넬쥴과 아서스를 도우며 동시에 그들을 감시해왔다. 아네테론, 메피스트로스, 말가니스 등 휘하의 다른 악마들도 함께였다. 다만 말가니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티콘드리우스는 넬쥴과 아서스를 의심하고 있었다.
켈투자드는 악마의 군단을 불러들일 길을 열 준비를 하면서 메디브의 마법책에 매료되었다. 책에는 엄청난 양의 마력과 지식이 담겨 있었다. 켈투자드는 그것을 모두 흡수하여 생전에 지었던 그 어떤 주문보다 거대한 주문을 만들어냈다. 마력이 밀어닥치며 아제로스와 뒤틀린 황천을 연결하는 균열이 생겨났다. 그 불길의 구덩이 속에서 악마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처음으로 도착한 것은 야수 같은 지옥사냥개와 지옥불정령이라고 불리는 영혼 없는 피조물이었다. 그리고 군단의 3인자 만노로스와 파멸의 군주 카자크 등 더욱 큰 악마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런 다음 마침내 아키몬드가 거대한 몸을 드러냈다.
불타는 군단 대강의 세력도
만 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 아키몬드는 다시 아제로스를 굽어보고 섰다. 아키몬드는 즉시 달라란에 분노를 돌렸다. 그는 달라란에 깃든 잠재적인 에너지를 모아 도시를 전복시킬 주문을 지었다. 달라란의 빛나는 첨탑이 하나씩 부서졌고 돌덩이가 되어 무너져 내렸다. 로데론에 이어 달라란 역시 이날 결국 멸망하고 만다.
순식간에 달라란을 멸망시킨 아키몬드
아서스가 쿠엘탈라스와 달라란을 무너뜨리는 동안 나머지 스컬지 군단은 계속해서 다른 북부 왕국들을 침략해갔다. 스트롬가드 왕국은 초반 스컬지의 침공을 맹렬히 막았지만 결국 국왕 토라스 트롤베인이 사망하면서 완전히 무너졌다. 쿨 티라스 부대 역시 전력의 역부족을 느끼고 퇴각만을 반복했다.
차례로 무너지는 동부 왕국들
도시국가 길니아스 왕국은 일찍이 세워놓은 그레이메인 성벽 덕분에 한동안은 버틸 수 있었다. 언데드들은 성벽을 넘지 못하고 밤낮으로 벽을 두들기기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휴식도 음식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성벽 바깥의 언데드 군세는 점점 더 불어나기만 할 뿐이었다. 길니아스 국왕 겐 그레이메인은 왕실 마법사 아루갈에게 해결책을 찾으라 명령했다. 이때 아루갈이 주목한 것은 에메랄드의 꿈이라 알려진 에테르 영역에 잠자고 있는 고대의 존재, 늑대인간(Worgen)이었다.
늑대인간이란 고대에 반신 골드린을 섬기던 일부 나이트엘프들이 야수의 본성에 빠져 탄생한 존재들이었다. 당시 다른 나이트엘프 드루이드들은 이 늑대인간들을 격리시켜 영원한 잠에 빠지도록 해놓았었다.
'웨어울프'가 아니라 '워겐'이다.
아루갈은 늑대인간이 통제 불능의 위험성을 갖고 있어 소환을 망설였다. 그러나 결국 국왕의 독촉에 하는 수 없이 소환 의식을 강행했다. 그는 물리 세계와 에메랄드의 꿈을 연결하는 균열을 열고서 늑대인간을 언데드가 모인 은빛소나무 숲으로 불러들였다. 소환된 늑대인간은 즉시 스컬지에게 분노를 퍼부었다. 송곳니와 발톱이 폭풍처럼 몰아치며 언데드를 찢어발겼다. 그 생명체들은 아루갈이 상상했던 것보다도 강력했다.
곧 스컬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길니아스에 온 스컬지 군대는 마땅한 리더가 없었기에 생각보다 쉽게 물러갔다. 그러자 늑대인간들은 이번엔 피를 갈구하며 길니아스인들을 향해 돌아섰다. 늑대인간에게 적과 아군의 구분은 없었다. 그들은 단지 살육을 원했다. 생존한 길니아스 병사들은 재빨리 성벽 안으로 후퇴했다. 성문이 굳게 닫혔다. 그레이메인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마무리된 듯했다. 스컬지는 물러갔고 늑대인간은 성벽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그러나 왕과 아루갈은 늑대인간이 저주를 옮긴다는 사실을 몰랐다. 성벽 안으로 후퇴한 길니아스 병사들 중에는 늑대인간에게 물린 이들이 있었고 그 사이에서 저주가 퍼졌다. 시간이 지나자 고통스러운 저주는 인간 희생자를 늑대 야수로 변화시켰다. 새로운 늑대인간들은 길니아스를 활보하며 더 많은 시민들에게 저주를 퍼뜨렸다. 길니아스를 구하려던 그레이메인은 괴물을 또 다른 괴물로 바꾼 셈이었다. 죄의식에 미쳐버린 아루갈은 어느 날부터인가 늑대인간의 우두머리가 되어 있었다. 겐 그레이메인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성문을 폐쇄하고 직접 늑대인간들을 사냥하며 동분서주하기 시작했다.
스컬지는 물리쳤으나 내부 문제로 골치 썩게 된 '겐 그레이메인'
이처럼 얼라이언스의 대부분이 무너지거나 공격받고 있는 동안, 전투에서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은 종족이 있었다. 바로 노움이었다.
고도로 영리한 노움 종족은 과학과 기계공학 기술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들은 얼라이언스에게 최신 무기와 전쟁 기계를 제공했다. 3차 대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노움은 얼라이언스에 그러한 무기를 계속 공급했지만 병력 측면에서는 지원이 미약했다. 그들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다른 얼라이언스 국가들은 알지 못했으나, 놈리건은 스컬지가 아닌 트로그라고 불리는 잔인한 생명체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아이언포지의 드워프들은 울다만이라 불리는 고대의 성채에서 유물과 지식을 수집하기 위해 곳곳을 뒤졌다. 그러다 그 구석진 틈에 수천 년간 잠들어 있던 트로그들을 깨우고 말았다. 트로그는 잔혹하게 탐험가들을 학살했다. 생존자들은 공포에 질린 채 울다만 밖으로 도망쳐 나와 아이언포지로 돌아갔다. 트로그는 땅굴을 파 그들을 쫓았다. 그러나 도중 다른 더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고 관심을 돌렸다. 노움의 놀라운 도시, 놈리건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공장의 소리였다. 트로그들은 노움들 쪽으로 동굴을 뚫어 그들의 도시를 침략했다.
노움은 트로그보다 신체적으로 열등했으나 지능 면에선 훨씬 우월했다. 노움의 뛰어난 지도자이자 일명 '땜장이왕'이라 불리는 겔빈 멕카토크는 트로그의 침공에 침착하게 대응했다. 겔빈은 요충지마다 병력과 전쟁 기계를 배치하여 침략자의 접근을 막아냈다. 한동안 겔빈은 얼라이언스와 연락을 줄이고 트로그를 막는데 집중해야 했다.
노움들의 땜장이왕 '겔빈 멕카토크'
한편 달라란을 무너뜨린 아키몬드는 곧바로 스컬지의 지휘권을 티콘드리우스를 비롯한 공포의 군주들에게 넘겨버렸다. 아키몬드는 리치왕을 불신했다. 그는 이제 동부 왕국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따라서 더 이상 리치왕 넬쥴과 아서스도 필요 없었다. 아키몬드는 군단의 도착에 앞서 길을 낼 수 있도록 군단의 3인자 티콘드리우스와 만노로스를 칼림도어로 미리 보냈다. 그들의 목표는 이제 영원의 샘의 마력을 억누르고 있는 세계수, 놀드랏실이었다. 스컬지의 지휘권을 뺏긴 아서스는 당황했다. 하지만 켈투자드는 리치왕이 이 상황까지도 모두 예견하고 있었다며 아서스에게 조용히 할 일이 더 있다고 속삭였다.
그리고 며칠 후, 아서스는 칼림도어 대륙에서 뜻밖의 한 남자를 만난다. 일리단이었다.